영화는 http://www.youefo.com/film/2092 (유에포)
http://www.youtube.com/watch?v=7sqc9nIKyP0 (유투브)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보신 후에 간단한 평을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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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 내용처럼 기획의도는 매우 거창합니다.
그냥 보신 분들 대부분이 기획의도대로 보시지 못하더군요. 제 불찰입니다.
제가 시나리오를 쓰면서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을 풀어본 글입니다. 시간이 되시면 한번 읽어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당당한 사람들
소포클레스의 고대 비극 <오이디푸스 왕>에는 유명한 장면이 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지키는 괴물 스핑크스가 오이디푸스에게 던진 질문. 아침에는 네 발로 걷고 낮에는 두 발로 걸으며, 밤에는 세 발로 걷는 것은 무엇일까? 너무 많이 알려져 오늘 날에는 수수께끼로도 취급받지 못하는 이 질문에 오이디푸스는 '인간'이라고 답했고, 그는 스핑크스라는 괴물을 무사히 지나갈 수 있었다.
문제는 오이디푸스가 답을 알았으되 그 의미를 알지 못했다는 데 있다. 수수께끼의 정답은 추상적인 인간 일반이 아니라 오이디푸스 그 자신이라는 사실을. '네발-두발-세발'로 이어지는 연쇄를 자식-나-부모라는 세 세대의 응축과 대응시켜보면, 오이디푸스야말로 세 세대를 자기 한 몸에 다 가진 인물이 된다. 그는 무엇보다 먼저 '자기자신'이면서 어머니와 결혼함으로써 스스로 자신의 '아버지'가 되었으며 어머니로부터 그 자신의 자식을 얻음으로써 '자식들'과 '형제'가 되었다.
세 세대를 한 몸에 응축한 오이디푸스는 '나'이자 '아버지'이자 '자식'이기도 한 삼종 혼합인간이고, 결국 인간의 얼굴, 새의 날개, 사자의 몸통을 한 몸에 가진 '괴물' 스핑크스이기도 하다. 스핑크스가 오이디푸스의 '인간'이라는 대답에서 읽은 의미는 '나오이디푸스이고, 나는 결국 당신(스핑크스)와 똑같은 괴물이다'였다. 하지만 스핑크스의 해석과 달리 오이디푸스는 수수께끼의 숨은 의미를 알아내지 못했고, 그 자신의 대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여기에서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시작된다. 자신이 괴물인 것을 모른 채 살아가던 오이디푸스는 '근친상간'이라는 인간의 근원적 금기를 넘어서 버린다. 하지만 그에게는 적어도 하나의 변명거리가 존재한다. '나는 미처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자신이 괴물이라는 진실을 대면한 오이디푸스는 알지 못한 사실이였다고 변명을 하며 살아갈 수 있었지만, 되려 자신의 두 눈을 찌르고 스스로 장님이 되는 것을 선택한다.
그는 여전히 신화 속 다른 영웅들처럼 숭고해질 수 없는 괴물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는 신이 계획한 금기에 스스로 참지 못하고, 눈을 찌르는 선택을 통해 자신이 괴물임을 인정한다. 신은 그에게 시련을 계획하며, 그의 죽음(끝)혹은 외면을 통한 삶의 계속, 두 가지 길을 예상했을 것이다. 그런데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괴물임을 인정하는 동시에, 삶을 이어나가는, 예상을 벗어난 선택을 감행한다. '나도 사람인데 적어도 살 권리는 있는 것 아닌가? 라고 말하면서도 '나는 괴물이야'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모순 덩어리 인간(괴물) 오이디푸스!
우리의 삶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긍정적인 말들을 갈구하는 한편에는 인간의 이기심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아간다. 오이디푸스가 자신이 괴물임을 알고도 살아남았던 것처럼, 우리도 모순을 견디며 계속 살아갈 수밖에 없다. 모순이 폭발하고 곪아터질 때, 현실과 이상의 간극 속에서 괴물이 튀어나온다. '법'과 '도덕'이라는 삶의 잣대가 우리의 일상에 더욱 구속력을 높여가고 있음에도 우리가 대면하는 '진실'은 오이디푸스의 그것처럼 어둡고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진실이 보이는 무서운 얼굴 앞에 모두 '당당'하라고 말한다. 더 이상 오이디푸스처럼 '눈'을 찌르거나 하지않고, 더욱 떳떳게, 자존감을 갖고 살아가라고 힘을 북돋아 준다. 그래서 오늘날 법과 도덕은 우리의 삶에 넘지 말아야할 선이 아니라, 나를 보호하는 든든한 보호막으로서 작동한다.
강자와 약자가 명확한 기준으로 구분되고, 약자를 세계에서 예외로 배제하는 것이 당연해지는 작동논리 속에서 '당당한 사람들'은 승자로 살아남는다. 당당함이 시대의 지향으로 우뚝 솟아오른다. 당당함은 지금 여기 우리가 가져야 할 최고의 덕목이다. 우리 자신이 '괴물'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의심을 날려버리는 동시에 우리와 우리를 둘러싼 시스템을 조화롭게 만들어줄 것이니까.
우리는 '자신의 눈'을 찌름으로써, 마지막으로 자신이 '인간(괴물)'임을 선언했던 오이디푸스의 선택을 망각하고 있다. 우리는 '당당'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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