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주사위 - 미스터 노바디(MR. Nobody,2009)를 보고 772


주사위

 

            아인슈타인이 말했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신은 자연의 섭리, 주사위놀이는 우연히 일어나는 사건을 말한다. 아인슈타인은 세계가 원인에 따라 결과가 단일하고 확정적이며 예측가능하다고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인과관계를 철저히 분석하면 현재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여겼다. 동시대에 양자역학은 아인슈타인에게 반기를 들었다. 양자역학은 확률론을기초에 둔다. 확률은 결정된 것이 아니다. 수차례의 결과로얻어지는 느슨한 법칙일 뿐이다. (주사위를 던져서 1이 나올확률이 1/6인 것처럼). 영화 MR.NOBODY의 바탕에는 양자역학에서 파생된 평행이론, 초끈이론이있다. 시작부터 중간중간 이러한 과학이론들은 현란한 비주얼과 함께 설명된다. 이러한 장면들은 관객앞에서 주사위놀이를 긍정하는 선언으로 읽힌다. 그러므로영화에서 관객이 받아들일 내용은 확실해진다주인공 니모의 삶과 주사위 놀이를 어떻게 맞물리는지. 그리고 여기에서 삶의의미는 무엇인지.

 

 

9개의 사랑

 

         주인공 니모의 삶은 선택에 따라 세개로 나뉜다. 세가지선택에서 또 다시 파생되어 만들어진 총 9개의 삶. 앞에서이야기했듯이 양자역학이라는 최첨단 물리학이론은 영화를 이끄는 큰 축이다.  일반적으로 과학은 전문가들의 것으로 생각된다.  Hard science의 대표격인 물리학은  더욱 그런데다 양자역학은 현대과학의 최첨단이론이 개입되어 있는 영역이다그래서중간중간 삽입된 강의장면이나 상징적인 은유로 이론을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그리고 그것을 2시간여의 시간동안  한 개인의 삶과 연결시키는 일은 매우 어렵다.

  사랑의 유람선. 영화 <도둑들>에서애니콜(전지현)이 한 말이다. 범죄물이지만, 대중영화로서 영화는 사랑이라는 코드를 수용했다. 가장보편적이고 거부감이 없는 정서여서다.  <미스터노바디>도 사랑의 유람선을 띄운다. 선택에 따라 아홉개로분화되는 니모의 삶. 선택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사랑이다이러한감독(혹은 작가)의 선택은 개인의 삶과 복잡한 과학 이론을엮는데 탁월한 역할을 한다관객이과학지식이 없더라도, 중간에 삽입된 상징과 은유를 읽지 못하더라도, ‘사랑이라는 코드는 관객이 영화를 즐길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이러한선택은 근본적인 한계를 갖는다. 니모의 삶을 나누는 첫번째 분기점은 세 여성이다니모의 삶이 입체적인데 반해 이 여성들은평면적이다. 1번은 지고지순한 첫사랑, 2번은 신경증적이지만서로를 배려하는 사랑, 3번은 경제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정신적인 면에서 공허한 사랑. 게다가 영화는 이러한 선택들 사이에서도 나름의 위계가있음을 은연 중에 드러낸다. 정신적 욕망에 충실한 선택일수록 니모의 감정은 직접적이고 감정적으로 표현된다경제적인 조건과 정신적 욕망 사이에서움직이는 사랑코드는 식상하다. 끊임없이 재탕되어 온 이야기이다. 게다가 정신적인 가치를 막연히우위에 두는 일은 관객들이 자주 봐온 서사였다. 영화는 이 식상한 길을 다시 걷는다어떻게 보면 영리하지만, 다르게 보면 영화가 취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놓치는 선택이다.    

 

무너지는 세계

 

         2092, 죽음을 앞둔 118세의 니모. 그는인터뷰를 하는 기자에게 말한다. 지금 순간도 모두 가짜야. 그러면영화가 보여주고 있는 인터뷰를 하고 있는 순간은 아홉개의 니모의 삶 중 어떤 것과 연결이 되어 있을까아홉 중 하나가 연결이 되어 있겠지만,미처 파악하지 못한 영화 속 장치들이 정교한 연결선 역할을 하고 있을테지만. 몰라도 크게 문제가 없다. <미스터 노바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한번에 명료하게 전달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터뷰가 끝나고니모가 죽음을 맞이하며 세계는 되감아진다. REW 버튼을 누른 것처럼.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다라는구조는 우리 모두의 뇌속에 박혀있다.  17세기유럽에서부터 시작한 과학혁명은 이러한 사유를 일반화시켰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지금의 기술적 풍요를 이룩했다그리고 사실은 상영 내내 우리는 이러한원인-결과론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영화를 읽어왔다. 9가지이야기(혹은 니모의 세계)는 중간중간  끊어졌지만, 관객은 나름대로 받아들인 원인과 결과를 통해 떨어졌던 이야기를 합치고, 다른이야기들은 걸러냈다. 어떤 삶이 좋은 삶인지 은연 중에 판단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영화는 마지막에 지금까지 이어졌던 세계를 무너뜨린다.

 웃어라. 영화가 말한다 필연적인 연관관계로 이루어진 세계가 무너진다는 사실은 공포이다. 예측불가능한 상황들로 가득한 혼돈의 상황일수록 인간이 무력하다는 사실을 더욱 실감할 수 있어서다. 무서움은뒤로 미뤄두고 우연을 긍정하며 웃는 얼굴들. <미스터 노바디>는 결국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자고 하는 영화이다우리가 살면서 하는 선택들은 정교한 때로는정교한 수치로, 때로는 직감과 같은 모호한 가치로 재단되고 원인과 결과의 자리에 놓여진다. 그래서 우리는 선택하기를 주저하고, 스스로를 제약한다. 아무리 고민해봐도 세상은 그저 뒤죽박죽일 뿐이데.

  영화의 마지막. 흩어졌던담배연기, 뒤섞인 캐찹들이 다시 질서 정연한 상태로 회귀한다. 우리가무질서로 여기고, 정돈될 수 없는 구제불능의 상태로 규정해온 일들의 가능성이 무한함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장면이다우연을 긍정하는 일은곧 삶을 긍정하는 일이다우연아래에서는 옳고 그름과 같은 절대적 가치기준이 없다. 그래서 우연을 긍정하는 가운데, 인간은 그름을 피하기 위해 선택하지 않는다.  ‘좋음을 향한 선택을 할뿐이다.   <미스터 노바디> 신도 주사위 놀이를 한다는 사실을 긍정하자고 말한다. 그래야 행복하니까.    

 

 

P.s: 영화의 메시지는 결말에 수렴되며 다분히 교훈적으로 읽힌다.  다양한 장치들이 난해한 영화로 보이게 만든다. 하지만 사랑 코드를 바탕으로 아홉개의 삶만을 보여주며 가능성을 제약하는서사를 택한 영화가 무한한 삶을 긍정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때만큼은 매우 명료하고 단순하다. 이러한 면이 영화를 쉽게 만든다. 하지만 많은 장점들이 없어져 버렸다. 이것이 <미스터 노바디>가 거대한 담론과 철학적 의미를 다루지만 결코 좋은 영화나 위대한 영화라고는 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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