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를 밟아다오- [바시르와 왈츠를](Waltz With Bashir,2008)을 보고 772


 

 

대학살

 

          1982년 레바논레바논 기독교 민병대는 3천 여명의 무슬림을 죽였다.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로 진군 중이던 이스라엘 군은 이 사건을 목격했음에도눈을 감았다사브라-샤틸라 학살여전히 정치적 공방 속에 책임여부와 진상 규명화해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바시르와 왈츠를]은 대학살에 대한 개인의 기억을 다루는 영화이다주인공은 아리 폴만 감독 자신이다당시 이스라엘 군으로서 학살의 현장 근처에 있었다하지만 당시를 기억하지 못한다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기억의 한 조각이 있을 뿐이다.

 

인간은 존엄한 존재이다라는 선언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시대에 살고 있다모든 인간은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는 평범한 진리.하지만 이것이 깨지는 모습을 쉽게 목격한다아우슈비츠에서르완다에서난징에서 수없이 많은,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장면을 목격했다우리는 이것을 하나의 사건으로 인지하지만이 비극의 이면에는 수많은 이야기와 맥락이 존재한다아무리 영화를잘 만드는 사람들도 대학살을 완벽하게 재현해내지 못한다이야기는 선택될 수밖에 없어서다


누군가는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어떤 이는 인간애를 말했다혹자는 가해자를 변호하기도 한다.

  어떤 이야기를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볼 것인가이러한 면에서 [바시르와 왈츠를]은 분명 특별한 영화다.    

 

 

기억을 잃다

 

           

주인공이자 감독인 아리폴만친구와 술자리를 가졌다친구에게 꿈 이야기를 듣는다.  친구는  26마리의 개에게 쫓기는악몽을 꾼다주인공은 놀란다그는 분명 대학살 당시 레바논에있었다참사를 목격할 수밖에 없는 위치였다.  25년이 지난 지금친구와 달리 당시를 기억하지 못한다.  

           

무엇을 본 것일까무슨 일이 있었던걸까무엇을 잊은 것일까?  왜 기억이 사라졌을까?  혼자서는 답을 찾을 수 없다머리 속에는 학살과는 관련이 없어 보이는 장면 하나가 남아있을 뿐이다. ‘사브라-사틸라 대학살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기록된 사건.  그는 가까이 있었지만 기억을 잃었다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그는 떠난다함께 전쟁을 치른 동료목격자조언자들을 만나기 위해.

 


사람이 될   것인가

 

                        시작된 여행그는 사람들을 만난다당시를 기억하는 양상은 제각각이다.  깨져있던 기억의 조각들을 하나씩 그의 앞에 나타난다과연 그는 이를 마주할 수 있을까?

 정신과 의사인 친구가 나에게 충고한다.

대학살에  대한 자네의 관심은 그 사건보다 훨씬 오래 전에 생긴거야다른 학살에서 비롯된 거라고… 그러니까 대학살이란 여섯 살 이후로 자네와 함께해 왔어자네는 그런 학살과 수용소들을 통과하며 살아왔고

 

         2차세계대전나치스는 고문과 실험을 자행하며 400만 명이 넘는 유대인을 죽였다주인공(아리폴만)의 부모님도아우슈비츠에서 겨우 살아남았다.  그리고 몇 십년이 지났다기독교를 믿는 민병대원들이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학살했다.옆에서 목격한 유대인의 자손이자 이스라엘의 한 병사참혹한 학살의 방관자가 되며 나는 기억을 잃었다.

 

         전쟁이 끝나고 전범 재판이 열렸다재판 중 가장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은 단연 유대인 대학살 문제였다강제수용소를 만들었던 헤르만 괴링도뒤늦게 잡혀 재판을 받은 아돌프 아이히만도 교수형을 당했다하지만 망각은 반복됐다한국전쟁에서도방글라데시에서도캄보디아에서도르완다에서도대학살은 되풀이 됐다새로운 학살의 참혹함에 질색하면서 과거의 기억을 쉽게 지워버렸다나치스의 유태인 대학살과 관계가 있는 주인공이사브라-사틸라지역에서의 기억을 지웠던 것처럼.

 

         감독은 말한다자신의 가슴 한 편에 있던 불편함그것을 대면하는 일을 시작하라고. 그리고 잃었던 기억과 마주하라고모두가 기억을 잃어야 이 무시무시한 도돌이표는 끝이 날 수 있을까반복해온 참혹한 역사에 브레이크를 밟으라고 말한다참혹하고 끔찍한 기억다시 또 괴물이 되고 싶지 않다면사람으로 살고 싶다면 바라보아라더 아플수록 사람다워지는 일이니까.

 

         [바시르와 왈츠를]이 불편하다고 주장한 사람들이 있다유대인 학살 문제를 언급하는 순간이스라엘 군의 방관자 입장을 강조하고나름의 면죄부를 주고 있으며 이스라엘 정부를 두둔한다는게 비판의 이유였다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말이다하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사브라-사틸라 학살을 놓고 하나의 절대적인 기준을 세울 수는 없다. 3천 여명이 억울하게 죽었다최소한 3천 개의 다른 이야기가있다그런 점에서 무엇을 두둔하고비판하느냐가 이 영화를 평가하는 최적의 기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이스라엘 군인으로서 참극을 대면한 아리폴만이라는 한 개인의이야기를 잘 다루고 있느냐가 평가의 기준이 되어야한다.    

 


탁월한 역설

 


       [바시르와 왈츠를]의 형식을 단정할 수 없다. 단순히 실사 다큐멘터리 위에 애니메이션이라는 도구를 입혔다고 생각할 수 없다다큐멘터리로 한번 만들어진 다음 다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이중의 결과물이다애니메이션이은 실사 다큐멘터리가 할 수 없는 무한한 표현력을 가져다준다.

 

 영화는 ‘사브라-사틸라 대학살’를 바라본  한 사람의 기억을 바라본다기억을 구성하는 꿈잠재의식전쟁,마약사랑실사 다큐멘터리 형식으로는 표현하기 힘든 장면들이다하지만 애니메이션이라는 형식을 사용한다면 충분히 그려낼 수 있다. [바시르와 왈츠를]에서 애니메이션은 단순한 도구를  넘어 주제를 형상화해내는 데 있어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배멀미에 고생하던 주인공의 친구잠깐 잠이 들어 꿈을 꾼다바다의 여신처럼 보이는 여자가 다가와 배 위로 올라온다엄청난 거인그는 그녀의 몸에 아기처럼 안겨 바다를 유영하고그 때 그가 타고 있던 보트는 폭발한다.

 

         [바시르와 왈츠를]이라는 제목을 붙여준 시가지 전투장면주인공의 동료는 적과의 교전 중 참지 못하고동료의 기관총을 뺏어 전장 한 가운데로 뛰쳐나간다난사를 시작한다기관총의 반동은 그에게 마치 왈츠를 추는 듯한 반동을 선사한다.  배경음악으로 왈츠가 깔린다전쟁이 가진 아이러니가 함축적으로 표현된다.

 

          사브라 사틸라 대학살이라는 사건을 놓고 객관은 존재할 수 없다수많은 주관적인 시선 중에 성실한 관점이 있을 뿐이다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게 반드시 성실성을 보증하지 못한다더욱이 영화는 한 사람의 기억을 되찾는 과정을 통해 사건에 다가가고 있다응축과 대치를 겪으며무의식 속에 은폐되기도 했던 기억을 되짚어가는 과정이다기억을 형상화하는 일은 더 환상적일수록더 사실적일 수 있는 역설적 상황에 놓여있다영화는 새로운 형식을 창조해 그 역설을 탁월하게 끌어안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덧붙여진 고통스러운 기록을 통해 영화는 완성된다충격적인 실사 화면잃었던 기억을 되찾고온전히 사건을 대면한다사건에 대한 개인의 기억이 바라보는 관객들에게도 고통으로 전해진다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이 만나 생긴 새로운 형식이 탁월한 역할을 해내며 감독이 목표를 달성하는 순간이다.  

 

 



덧글

  • Miriel 2014/05/22 23:13 # 삭제 답글

    잘 읽고 갑니다. 예전에 봤던 영화인데 두고두고 생각나더군요. 조만간에 다시 한 번 볼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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