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8세기 오스만 투르크는 영토가 세 개 대륙에 걸쳐있을 만큼 거대한 제국이었다. 오스만 제국의 대표적인 무기는 큰 대포였다. 과학의 발전과 함께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던 서유럽 국가들도 제국의 대포 앞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나 후에 이 대포는 오스만 제국의 발목을 잡고 만다. 기술이 발달하고 전투의 양상이 기동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뀌는데도 투르크는 포의 크기를 키우는 데만 주력했다. 결국, 오스만 투르크는 크림 전쟁에서 러시아에 대패하며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TV는 지난 50여년 간 대중과 가장 가깝고,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매체였다. 방송뉴스는 TV라는 매체가 가질 수 있는 장점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이전에 가장 강력한 매체였던 신문보다 동적이고 다채로운 장면을 보여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방송뉴스는 빨랐고(신속성), 가까이(현장성) 다가왔다. 신속성과 현장성이 주가 되다보니 뉴스에서 사건의 심층적인 면을 파헤치거나 관점을 제시하는 데는 소홀했다. 대신에 그 몫은 신문이 담당했다.
인터넷이 등장하더니 스마트 폰이 출시됐다. 매체들 사이의 경쟁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결합하여 생긴 시너지는 TV를 가장 빠르고 생동감 있는 미디어의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사실 이들의 등장이 TV에게만 위협이 된 것은 아니었다. 신문에게도 위기로 다가왔다. 이에 대해 미국 신문의 대응은 매우 적극적이었다. 선봉에는 뉴욕타임즈가 있었다. 2012년 워싱턴주를 덮친 눈사태를 다양한 기법을 바탕으로 스토리텔링했던 ‘Snow Fall’이 그 시작이었다. 이를 기점으로 워싱턴 포스트의 ‘The prophet of oak ridge’, 칼럼리스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의 기고문을 영상으로 옮기는 영상 등, 지면의 한계를 뛰어넘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신문이 가진 고급정보를 전달하는 다양한 시도들이 나타났다. 물론 이러한 노력을 하지 않은 신문들은 도태됐다. 반면에 매체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이를 자신의 장점과 접목하려한 회사들은 이전보다 탄탄하고 독보적인 위상을 가진 언론으로 거듭났다.
현재 TV의 발전 속도는 대중이 요구하는 빠르기와 생동감에 부흥하지 못한다. 이는 특히 한국 방송에서 두드런진다. 현재 한국 방송이 가장 우선하는 가치는 ‘공정성’이다. 사실 공정성은 단편적이고 얕은 기사와 궁합이 잘 맞는다. 그 잣대가 매우 애매해서 특정한 관점으로 사건을 해석하기보다는 불편부당한 사실만을 보도하기 위해 노력한다. 방송국의 운신 폭은 좁아지고, 신속성, 현장감을 생명으로 여기며 특종에 몰두한다. 이러한 방송문화가 가진 한계는 ‘세월호 사건’을 보도하며 치부로서 여실히 드러났다.
터키의 수도 이스탄불에 가면 어마어마한 크기의 대포들을 만날 수 있다. 그것은 오스만 투르크 영광스러운 기억이 아니다. 변해야 할 때 변하지 못하고 뒤쳐져버린 후회의 산물이다. 크기에만 몰두한 나머지 너무 커져버린 오스만의 대포는 나중에 포가 나가지 않는 쇳덩어리로 전락했다. 매체의 주도권이 급변한다. 방송 뉴스도 변해야 한다. 더 이상 현장감, 신속성은 그들만의 무기가 아니다. 공정성이라는 허상을 추구하는 데서 벗어나, 취재, 보도에 있어 다양한 가능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를 통해 보다 깊이있고 창의적인 관점을 TV라는 미디어의 특성에 맞게 전달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은 계속 발전하고, 새로운 매체는 끊임없이 출현한다. 위기 속에 신문들은 뉴욕타임즈, 워싱턴 포스트를 배우기 바쁘다. 어쩌면 매체들 사이의 전쟁에서 ‘큰 대포’는 고집스럽게 자기의 길을 걷고 있는 텔레비젼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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