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독약' [그녀(Her,2013)]를 보고 772


느낌 안에 위계


 '눈'은 강하다. 특히 과학을 토대로 비약적인 발전을 시작한 시기부터 ‘본다’는 행위는 다른 감각에 비해 높은 지위를 누렸다. “내가 봤어. 그러니까 그건 맞아”식의 검증은 과학적인 사유의 바탕이었다. 이성, 합리적인 태도는 눈과 가장 깊은 연관 관계를 맺어 왔다.(Reason을 찾기위해서는 Reasonable해야한다) 특히 지난 300여 년 사이, 과학 기술의 발전과 함께 눈의 위상이 높아진 정도는 다른 감각에 비해 월등했다.  


영화는 이러한 근대의 감각 질서가 갖는 특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매체이다. 우리가 보통 영화를 두고 느낀다, 듣는다고 하지 않고 ‘본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영화에서 시각은 지배적이다. 물론 다른 감각도 간과할 수는 없다. 사운드를 빼고 영화를 논할 수 없고, 촉각, 후각을 영화와 접목하려는 시도도 보인다.  하지만 1920년대 토끼 영화(Talky Movie)와 무성영화간의 헤게모니 경쟁에서 볼 수 있듯이 영화를 둘러싼 논의는 눈의 관계를 전제로 이루어진다. (물론 Talky 영화가 승리를 거두었다. 오늘날 당연하게 생각되는, 기술의 진보로 받아들여지는 소리 영화가 무성영화와 권력투쟁을 벌였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한편에서는 시각 중심의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시도도  있었다. 오스카 와일드로 대표되는 심미주의 작가들은 문학 속에서 촉각이나 청각을 형상화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럽게 당시 과학- 눈- 자본주의로 이어지는 지배적인 질서 자체와 타협을 거부하는 성격을 가졌다.  심미주의 작가들의 작품은 동시대 리얼리즘을 표방한 작가들처럼 직접적으로 사회를 비판하거나, 혁명을 말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눈‘ 중심의 질서를 거부한다는 사실만으로 보편의 질서를 지향하는 세상을 뒤흔드는 불순한 힘을 표출했다.


<그녀> 속 여자 주인공 사만다는 육체성이 없다. 두 명의 주인공 중 한 명이 소리로만 존재한다. 여타 영화에 비해 청각은 당연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질문들

- 영화에서 청각은 어떻게 이야기와 관련되어 있는가? 

- 영화 매체가 지켜온 질서 시각>청각> 나머지 감각 식의 위계는  <그녀>에서는 무너지는가? 

- 로맨스 속에서 불순한 이야기를 어떻게 담아내는가? 



핑퐁


 사랑으로 두 사람의 삶은 충만하다. 시어도르와 사만다는 애정에서 비롯된 긍정적인 에너지를 대칭적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는 지속되지 못한다.  사만다부터 시작했다. 그녀는 보편적인 인격체가 아니다. 물질성이 없다. 목소리로만 존재한다. 자신때문에 남과 다른 관계여야 한다는 사실은 마음 속에 불안으로 자리 잡는다. 불안이 상승하면서 끊임없이 가능성을 넓혀왔던 사랑의 에너지는 상대의 힘을 빼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사만다가 시어도르를 위해 여성을 초대해, 실제 성관계를 주선한다. 분명 동기는 사랑하는 상대를 위한 것이지만, 그것은 사만다와 시어도르 두 인격체 모두에게 상처를 남긴다. 이 시퀀스는  인간과 운영체제 사이의 사랑이라는 미지의 영역을 개척해오던 관계에 불안이 끼어들며, 관계가 정체되는 양상을 잘 보여준다. 


그래도 사만다는 어려움을 이겨낸다.  그에게 피아노 연주를 들려준다. 이어서 말한다. “우리는 사진을 찍을 수 없잖아. 이 연주는 우리가 찍은 사진과도 같아” 남들과 다른 관계에 걸맞은 다른 사랑의 방식을 제시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여러 영화에서 사용되어 왔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빈부격차, 언어의 벽 등 특수한 관계가 나타난다. 다르다는 사실은 결핍을 만들고, 그것은 사랑의 걸림돌이다. 이 때 많은 텍스트들은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특수한 관계가 더 아름답다는 식으로 결말 겸 해결책을 제시했다. 다름에서 비롯된 장애물을 넘어서는 가장 모범적이며, 전형적인 이야기이다. 사진을 찍을 수 없는 상황을 그 때의 감정을 담은 ‘음악’으로 대치하는 설정은 오래 전부터 반복되어온 전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보는 것만큼 듣는다는 행위가 중요한  <그녀>에서 설득력이 있고 매력적인 아이디어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것은 답습이다.


사실 여기에서 끝나도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이다.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관객은 감동하며 극장을 나설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고 다음을 이야기한다. <그녀>가 탁월한 영화가 되는 지점이다. 이야기 내내 사만다는 자란다. 더  많은 정보를 처리하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며, 풍부한 감정을 학습한다. 이제부터 역으로 시어도르가 불안을 느낀다. 사만다와 달리 그는 넘겨받은 불안을 해결하지도, 쳐내지도 못한다.  그녀의 성장은 시어도르와 이별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까지 나아가기 때문이다. 만약 사만다가 시어도르와 같은 육체가 있는 인격체였다면, 결혼, 육아, 아이의 학교 입학식과 같은 우리 주변의 통과의례들이 관계의 당위성을 마련해줄 것이다. 그와 그녀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그것들이 개입할 수 없다. 그녀는 기존의 잣대로 규정할 수 없는 다른 존재이니까.


능숙하게 극단을 말하기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 한 연예인 스타 커플이 헤어지며 말했다. 대중은 이 말이 잘 생기고 예쁜  두 사람에게만 적용된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녀>의 감독은 다르다. 그는 이 말이 가장 탁월한 사랑의 형식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어도르와 사만다는 사랑하지만 헤어진다. 이별의 아픔과 슬픔은 그려진다.  그 모습은 처절하지 않고 오히려 아름답다. 사실 관객은 이미 시어도르와 전 부인과의 관계에서 이별을 목격했다.  그리고 관객은 ‘다시‘ 한 여자와 사랑을 시작하는 남자의 모습에 몰입했다. 영화가 끝나갈 때  ‘다시‘ 출발점에 서야할 남자를 시종일관 애정을 품고 바라보도록 유도된다. 이런식으로  감독은 ‘다시’를 반복, 강조한다. .


  사랑은  ‘영원’, ‘지속’과 어울린다. 그 앞에서 ‘다시’, ‘이별’과 같은 말을 긍정하는 일은 보편적인 사고와 충돌하며 불온한 시간을 만든다. <그녀>는 능숙하고 유연하게 관객을 불편한 순간으로 끌어들인다. 청각과 시각의 사이에는 과감한 전복이나 한 쪽의 일방적인 우세보다는 적절한 긴장과 조화가 유지된다.  말하고 듣는 것과 보는 행위 사이의 긴장과 갈등은 이야기 속에서 충분히 이루어진다. 영화 내적인 요소에서 까지(영상과 음향 사이) 불꽃이 튄다면 그것은 관객들에게 과잉으로 다가올 것이다. 감독은 직접적이고 날카롭게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 절충과 절제를 택한다. 또한 자신의 목소리로 다른 이의 편지를 대신 쓰는 주인공의 직업 설정이나 미래임에도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한편으로는 고전적으로도 보이는 패션, 소품, 기기 등의 시각적 형상이 적극 활용된다. 이는 이야기와 어울리며 영화를 포장하는 역할을 한다.  감각을 통한 지시는 축소 생략하는 방향으로 기술은 발전하고 있다. 음성, 터치와 같은 감각의 활용도 간소해지고 있다.  하지만 영화 속 미래는 '목소리'와 '귀'를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사용한다. 현실의 흐름과 견주어 볼 때 영화 속 세계는 이상하다. 그러나 영상, 음향의 탁월한 완급 조절과 참신한 상황 구성은  이러한 작은 티끌을 낭만적인 감성으로 포장한다. 관객은 작위적일 수 있는 설정을 망각한 채 영화가 풀어내는 이야기에 몰입한다. 이야기가 마냥 아름답다는 착각과 함께.  


<그녀>는 일반적으로 좋은 멜로 영화가 갖추는 섬세한 감각, 아기자기한 연출, 매력적인 캐릭터 등의 미덕이 잘 충족되어 있다.  이러한 맨들맨들한 표면 속에 독한 씨앗이 숨어있다.  이 독은 우리가 가져온 사랑의 환상을 깨뜨린다. 달콤한 영화의 맛에 심취해 이야기를 따라가 보면, 어느새 우리는 여지껏 인간 이하의 존재로 여겨왔던 존재(사만다)를 동등한 인격체로 긍정한다. ‘사랑의 완성은 이별이다’라는 불온하고, 괴상망측한 명제에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가 끝나고, ‘좋은 영화야’ 라고 탄복하는 순간, 우리 몸 곳곳에는 독이 퍼진다. 즐겁다.  환상(영화)이라고 생각하던 것에 몰두 했을 때 오히려 환상이 깨지고, 실재(현실)와 마주하는 이 극단의 경험은 정말 쉽게 오지 않기 때문이다. 



덧글

  • ㅇㅇ 2014/06/19 00:49 # 삭제 답글

    영갤에서 링크타고 와서 잘 읽고 갑니다. '정말 그런가?'싶은 부분도 있지만, 감각의 위계 질서를 통해 사만다의 불안을 설명하고자 한 건 참신한 접근 방법이네요.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