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손
“그 골은 나의 손이 넣은 것이 아니다. 신의 손이 넣은 것이다”1986년 멕시코 월드컵. 아르헨티나 축구선수 디에고 마라도나의 손에 공이 맞고 들어갔다. 월드컵 역사에서 회자되는 ‘신의 손’ 사건이다. 이 골로 상대 팀 잉글랜드는 탈락했고, 이후 승승장구를 거듭한 아르헨티나는 월드컵을 거머쥐었다. 이 사건을 놓고 평가는 극명하게 두 편으로 갈린다. 한 편에서는 신의 손을 승리라는 목표를 향한 열정과 투지의 산물로 본다. 다른 쪽에서는 목적을 위해 규칙을 어긴 비겁한 반칙이라고 평가한다.
1953년 전쟁이 끝났다. 폐허가 된 대한민국. 그 땅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고층건물이 들어서고, 넓은 도로가 깔렸다. 작은 설탕 공장은 세계 초일류 기업이 되었고, 이 땅에서는 UN과 같은 세계기구의 수장까지 배출했다. 올림픽, 월드컵을 개최했고 동계올림픽도 준비하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신의 손’을 선문했기 때문이다. 당장의 배고픔,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은 마법과 같이 가시적인결과물로 나타났다. 세계가 한국을 향해 부러움과 찬사를 보낼 때 우리는 마라도나가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를자랑스럽게 여겼다.
때로는 반칙이 필요할 때도 있었다. 절차와 규정을 지키고 약자를 배려하면 돈도, 시간도 훨씬 많이 들었다. 그 때마다 신의 손은 제몫을 톡톡히 해냈다. 소외된 목소리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둔갑시켰다. 행여 찢어지는 비탄과 절규에 관심이라도 가려고 하면, 더 크고 더 높고, 더 넓은 무언가를 눈 앞에 내밀었다. 화려함에 눈이 팔린 우리는 망각했다. 그리고 그 상태로 마음껏 누렸다. 신의 손 덕분이었다.
‘신의 손’도 한계가 있었다. 그저 우리를 잊게 할수 있을 뿐이었다. 신의 손이 아픔의 근원을 치유해줄 수는 없었다. 오랜시간방치된 환부는 곪았다. 신의 손도 무력해질 수밖에 없는 고통이 스멀스멀 새어 나왔다. 사고로 수많은 사람이 죽는다. 누군가는 삶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생을 포기한다. 무시됐던 목소리들이 유령처럼 공포와 폭력적인 형태로 배회한다. 여지껏 사용되었던 신의 손이 보여준 망각의 마법은 더 이상 효과가 없다. 오히려분노만을 불러올 뿐이다. 이제는 ‘신의 손’에 효력정지를 선고할 시기가 왔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이 이전 월드컵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심판 뿐 아니라 카메라, 통신 장비 등의 과학기술이 판정에 적극 활용되고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이제 축구장에서 1986년과 같은 ‘신의 손’은 더 이상 용인되지 않는다. 손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엄중한 판정의 대상이 된다. 만약에 심판이 보지 못하고 넘어가더라도 경기 후에 처벌을 한다. 이러한 FIFA의 변화에 전 세계 축구팬들과 언론은 큰 호응을 하고 있다. 이는 축구란 ‘팔을 제외한 신체기관’을 사용해 하는 운동이라는 원칙이 지켜졌을 때하는 이도 보는 이도 즐거운 스포츠라는 기본에 다가가는 자세이기 때문이다. 2014년 대한민국, 앞으로 나아가는 게 익숙했던 우리에게 지금은 불편한 시간이다. 이 불편함은 우리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디로 갈지 갈피를 잡지 못할 때 최고의 답은 우선 기본으로돌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오랜 시간 믿어왔던 ‘신의 손’을 버리는 일이 그 첫 걸음이다.
덧글
하지만, 우려스러운 것은 지금의 사회는 그 '신의 손'을 어느 때보다 더 갈구하고 있는 것 같아 우려스럽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