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는 그 남자는 묶지 못하는 남자였다. small op

주제: 줄


 같은 생활관 보급병 선임이 그를 찾았다.  뻣뻣했던 몸이 긴장으로 더욱 움츠러 들었다. 1. 창고에 간다. 2. 보급품의 수량을 센다. 3. 박스에 집어넣는다. 4. 가득 찬 박스를 노란 색 노끈으로 묶는다. 그는 갓 전입한 이등병치고는 제법이었다. 3번까지는 완벽에 가까웠다.  3번까지는 완벽했다. 하지만 4번이 문제였다. 줄에 있어서는 젬병이었다. 선임은 입으로 잔뜩 욕을 쏟아부으며 그를 밀쳤다. “아오, 폐급 하나 또 들어왔네, 무슨 이 나이 쳐먹고 줄 하나를 못 묶어”


군 생활 2년은 괴로웠다. 부대 안에서의 모든 일은 ‘줄’을 통해 돌아간다. 다른 이들은 이를 몸으로 배워 나간다. 창고에서 욕을 한 바가지 얻어먹었던 그날, 그도 이를 깨달았다면 좋았으련만, 아둔하게도 그저 ‘열심히 하면 좋아지겠지’라는. 절대 해서는 안될 생각을 품고 말았다. 교육 훈련이 시작된다. 포승줄 묶는 법을 배운다. 당연히 그는 쩔쩔 매다 간부와 선임들의 불호령에 주눅이 들기 일쑤였다. 포승줄 뿐이 아니다. 총기 피딸끈, 피아식별띠, 탄띠.. 부대 안에는 수많은 줄이 있고 이를 잘 묶어야 하건만.



무엇보다 그는 군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묶지 못했다. 아니, 묶어야 하는지 조차 생각하지 못했다. 그의 밑으로 들어온 후임들. 남들보다 2년 늦게 들어온 그는 그들이 마냥 동생 같았고 귀여웠다. 실수에는 눈을 감았다. 힘이 들어 보일 때는 먼저 다가갔다. 스스로를 누구보다 착한 사람이라고 자부했다. 하지만 입대한지 일년이 지났을 무렵, 그의 주변에는 선임도, 동기도, 후임도 아무도 없었다. 답답하게도 그 때도 ‘잘’ 묶는 것의 중요함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이 열심히 하지 못한 것을 자책했다고 한다.


다행이었다. 전역 전 날이 되어서라도 그것을 깨달았다는 게. 위병소 앞. 동기 한 명과 함께 서 있었다. 같은 날 입대하고, 함께 전역을 맞이하는 알동기. 바로 옆 생활관에서 6개월 넘게 목소리 큰 왕고(참) 노릇을 하던 녀석이었다. 함께 부대 밖으로 나가려던 찰나. 옆 생활관 녀석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튀어나왔다. 동기 녀석을 붙잡았다. 언제 준비했는지 줄로 그 녀석을 꽁꽁 묶었다.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흠씬 두들겨 패주었다. 조금 거칠지만 뜨거운 작별을 덩그러니 떨어진 채 지켜보는 자신이 처량했다. 저 멀리 같은 생활관 병사들이 보였다. 그들은 그를 외면하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이윽코 헹가래를 치더니 포옹을 하고 있었다. 몇 놈은 눈물도 보였다. 부러웠다. 아니 아름다웠다. 그럴수록 잘 알 수 있었다. ‘묶는 것’의 중요함을 뒤늦게 깨우친 순간이었다.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그는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허허실실했던 스스로를 꽉 묶었다. 영어 성적과 몇 개의 자격증이 곧 따라왔고, 곧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었다. 군 시절의 실수는 반복되지 않았다. 상사에게는 쉽게 꽉 묶이는 줄이었고, 후배들은 숨도 쉬기 어렵게 꽉 묶어주었다. 그는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세상은 ‘줄’로 가득하다. 양 끝을 잡고 묶어버리면 그만이다.  이렇게 쉬운 것을 모르고 있었다니. 힘들었던 지난 날들을 가끔 후회했다.


다만 너무 많이 나갔나 싶은 것도 있었다. 여자친구의 완강한 거부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울먹이는 그녀의 온 몸을 밧줄로 꽁꽁 묶었다. 그렇게 그는 사랑을 나눴다. 마음이 찜찜해도, 매달 바치는 명품 백이면면 충분한 보상이 되겠거니 싶었다. 


퇴근 하는 길, 여자친구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오래 생각해봤는데, 정말 그만 하자. 더 이상 못 참겠어. 평소에는 착한 사람이 막 변할 때 보면 너무 무서워” 묶는 게 당연하니까 묶었을 뿐이건만. 짜증이 날 새도 없이 전화가 왔다. 회사 인사과장이었다. “아니, 회사에서 일 좀 못한다고 다 큰 사람을 때리고, 기합을 주면 어떡합니까, 당신 미쳤어요?” 그에게 바로 3개월 정직 처분이 내려졌다. 내일 아침에는 당장 경찰서에 다녀오라 했다는 전무의 말도 덧붙여졌다. 거듭해서 말하지만 그는 참 답답하고 미련한 사람이다. 당시 그는 스스로가 운이 좋지 않아 생긴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왜 묶인 줄도 언젠가는 묶이지 않은 줄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까?  


덧글

  • 긴법 2016/09/08 03:51 # 삭제 답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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