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화장실 small op

즐거운 화장실

 

 

            강 창 희

 

 

 

 (거의 매달) 사람들이 어떤 소행 때문에 교수형을 당했다. 살인에 대한 광기가가득했다. 교양을 누리고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던 몇몇은 생각했다. ‘어떤붉은 별이 지구에 너무 가까이 다가왔도다’  

 

 

유체이탈

 

 오른손에 말아 쥔 하얀 휴지로 구멍을문지른다. 새하얗다. 시원하게 묻어나오지 않는다. 당연하다. 똥을 싸지 못하고 있다.사학 명문 J대학교 법대 후문, 대성 맨션, 406호 화장실에는 축축한 물비린내와 오줌 지린내 뿐이었다.  

경찰은 도심 한복판에서 발생한 이번 사고로사상자가 총 100 여 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현재신원이 확인된 사망자는 53세 남자 강석민 씨, 22… ”

침대 위를 굴러다니는 스마트폰. 방송국의 라디오어플리케이션은 너의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여자 아나운서가 또박또박 낭랑한 목소리로 사고 소식을전했다. 지금으로서는 당시에 그것이 너의 귓가를 맴돌았는지 알아낼 도리가 없다.

 

 2주 전이었다. 너는 눈을 비비고 연신 F5키를 누르며 모니터에 뜬 화면에 집중했었다.       

 

 귀사는 귀하와 함꼐 할 수 없게 되어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그게 시작이었다. 낙방을 알리는 소식. 당연히 너는 몹시 기분이 나빴다. 스트레스는 아마 몸 곳곳에 퍼졌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모든  원인은 명확했다. 하지만 이를 풀어내는 것은별개의 문제이다. 생각보다 세상의 문제는 원인이 명확한 경우가 많지만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통할 줄 알았다(바라다 보니 믿게 되었다. 그래서 더 큰 충격이었다). 모처럼 면접의 기회를 잡은 너는 들떠 있었다. (이는 너 자신을속이는 목적의 딸딸이다) 스터디원들과 옹기종기 카페에 모인 자리, 너는옆사람에게 울먹이듯 투덜거렸다. 떨려 죽겠다. 진짜 되면 좋겠는데…” 그러면 사람들은 충분히 준비됐네. 너 아니면 누가 되겠어 라며 다독였다. 불합격소식을 접했을 때 실망을 하는 게 당연했지만, 너는 그것이 순리에 맞는 일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열심히 열심열심히. 어떻게 해야 기자가 될 수 있는지 알고있었다. 출중한 스펙은 당연하다. 잡다구리한 통계를 외우며, 제시된 논제에 대해 이 새끼는 정말 잘 알고 있구나라는 인상을 주는 일. 하지만 너는 하지 않는 척피했다.

 

씨발 솔직히 그거 안다고 좋은 기자 되냐? 언론인이 씨발. 기계야? 좋은 글의 조건은 기술이 아니라 신념이야. 나는 내 방식대로 간다.”  

 

 쓴웃음을 지으며 어떤 방향으로도 한 발자국을떼지 않는다. 언론의 현실, 기자 채용 제도의 문제점을 말할때마다 헛헛해질 수밖에 없지만 너는 멈추지 않았다. 알맹이를 알지만 너무 유치해서 가지 않고 맴돌고있다고. 결국은 그렇게 속이고 또 속이는 식이었다.

 

 여럿이 함께 하는 자리에서 날카롭고 품격이있으며 유머러스한 남자가 되려고, 아니 그렇게 보이려고 노력한다. 너는자주 착각했다. 누구를 만나든 언론고시 준비생이라는 사실을 항상 의식한다. ‘언젠가는 메이저 신문사에서 기사를 쓸 예비 기자가 되는 데 신경을쏟는다. 한 쪽 입장에 서는 일을 세련되지 못한다. 뭔가논쟁이 생기면 한 걸음 물러나, 모든 것을 관망하는듯, ‘세상에는진리란 없잖아라는 표정을 지으며 뒷걸음질 쳤다. 어떤주제가 나오든 10 분은 그럴듯하게 말할 수 있다. 다른사람의 말에 무조건 어깃장을 놓는 게 버릇이다. 대통령에게 쌍욕을 하는 친구 앞에서도, 백수 루저들을 씹어 제끼는 친구한테도 너는 이런 식이었다.

 

성급히 이야기할 게 아니야. 이성적인 관점에서 그 안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파악하는 게 중요해

 

 가스레인지 위 부대찌개가 끓을랑 말랑, 라면을 넣을까 말까 고민이 될 때 즈음, 밑반찬이 나올 때 들이킨소주 한 잔으로 시작된 누가 누구를 먹고, 어디 업소에서 얼마를 주고,어떤 자세로 했는지 따위의 흩어지는 말들. 너는 이를 자연스럽게 문학과 영화, 예술에 대한 대화로 이어간다. 그것도 참 재주다. 어느새 그럴듯한 철학자 한 명을 들먹이고, 결국 인간성과 실존, 도덕과 윤리의 차이, 예술의 정치성을 논한다. 심각해지지 않는다. 조금만 파고들면 너도 잘 모른다는 사실이 들통이나겠지만, 술자리에서 그렇게 치밀한 태도의 인간은 드물다. 적절히쌍스러운 말을 섞어가며 무거운듯 가볍게. 너는 네가 그런 면에서 제법 괜찮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어디서나 이런 살롱분위기를만들어내는 사람을 뇌가 섹시하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지만 너는 자주 착각했다

 

 스물 여덟 살, 스스로를 어떤 기준에 대고 가늠하는 일이 늘어난다. 지금쯤 뭐 하나통과점이 있어야 하건만. 그런 면에서 이번 신문사 면접은 통과가 절실했다. 기자 타이틀은 너가 너답기 위해 필요했다. ‘이성적이라는 말을 입에 붙이고 사는 너지만, 이번 만큼은 간절함이 신의마음에 닿아 운이 따라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다가오는 토요일에는 07학번 동기 모임이 있다. 여자 애들은 취업 2~3년 차가 됐다. 대리를 단 아이도 있다. 남자들도 제 갈 길이 확실하다. 행정고시를 준비하다 지금은 7급 공무원 시험을 치는 친구 H와 언론 고시 준비생인 너.  두 놈만 남았다. 모임 공지를 확인하고, 옷장 캐비닛을 열었다. 일요일이라 정장을 입고 올 녀석은 없다. 모두가 간편한 캐주얼 복장. 마침 쌀쌀해지는 11월은 멋을 부리기 좋다. 비루한 청년 백수의 이면에는 한편으로 언론인을 꾸며 도전하는 네가 있다. 얽메이는 것을 거부하며 높은 꿈을 위해나아가는 느낌. 옷차림에는 이 모든 게 담겨야 한다. 회사생활 투정을 쏟아낼 녀석들 앞에서 곤조있게 정치와 사회를 논하려면 다른 분위기를 풍기며 초라해지지 않는 게 중요하다. 30분 정도 옷장을 뒤적이던 너는 짜증이 섞인 한숨을 중얼거리며 모니터 앞에 앉았다.       

 

 3만원,5만원, 7만원. 차례 대로 국산, 일본. 유럽의 스파 브랜드. 목덜미의상표를 뒤지어 까는 몰상식한 놈이 나타나지 않는 한 브랜드는 드러나지 않는다. 새 옷이라 원단이 무엇이든깔끔해보일 터다. 생김새는 다 비슷하지만, 그래도 네 눈에는 7만원 짜리, 정확히 7 9 8백원 짜리가 마음에 들었다.그런데 체크카드에는 7만원 밖에 없었다.   

 

 모니터를 끄고, 입에 담배를 물었다. 묵직한 배를 쓰다듬다 배를 주먹으로 쳐보았다. 억지로 변기에 앉았다. 힘을 줘도 그것이 엉덩이 가운데 그곳까지전달되지 않는다. 아마도 그것은 최종 면접이 주는 긴장과 그 결과를 기다리는 중에 생긴 불안함에서 비롯되었으리라. 불합격으로 원인은 사라졌다. 자연스레 변비도 끝이 나야 합당하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 뒤 다시 힘을 주었다. 아무 일도 없다. 똥은 나오지 않는다. 한참 힘을 주니 슬슬 똥구멍이 아파왔다. 변기를 향해 제 본분을 다하지 못한 휴지 뭉치를 던졌다. 그 위에가래침을 뱉고 나서야 물을 내렸다 .

 

 라디오에서는 여자 아나운서가 사망자와실종자를 구분해서 이름과 성별 나이를 또박또박 읊고 있었다. 혼잣말로 얼굴을 찡그리고 중얼대던 네가, 그 이름들을 듣고 있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케겔

 

 힘을 주며 쪼인다. 숫자를 센다. 긴장을 풀며 숨을 내쉰다. 하나. . 하나. . 하나열리고 닫히고구멍이 함께 숨을 쉰다. 한참 전 일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옆 자리에 앉은 녀석은 케겔운동을 계속하면 정력이 강해진다고 알려 주었다. 너보다 성적이 한참 아래였던 그 아이의 말은 확신을 주지 못했다. 더욱이그 이후 너는 생각보다 몽둥이를 쓸 기회도 별로 얻지 못했다. 그래서 케겔운동은 한동안 잊혀져야 했다. 분말형 변비약도, 액상형 그것도,야쿠르트도 효과가 없는 지금, 구멍에 신경을 쏟는 케겔운동은 직관적으로 좋은 방법이었다. 쪼이고 풀면서 어떤 생각을 한 너는 피식 입꼬리를 울렸다. 술자리에서이걸 말 해봐야겠다. ‘똥꼬운동이 아니라 케겔운동’.

 

케겔운동이 뭔지 알아?”

그게 뭔데?”

(풉 웃음을 터뜨리며) “있잖아 항문에 힘을 주었다 뺐다 하는건데, 야 그게 변비랑 정력에…”

 

(아마도 여자들은 부끄러운듯웃으며 팔을 밀치고 말할 것이다.)

아 뭐야 더러워

 

상상 속의 대화만으로도 너는 해죽거렸다. 추접스럽지만솔직하고 센스있는. 이 정도면 제법 참신한 B급 코드로 먹힐터였다.

 

 어느새 너는 손으로 사타구니 주변을 쪼물딱쪼물딱 거리기 시작했다. 케겔 운동은 5분을 넘어가지 못했다. 케겔운동이 실제로 변비에 특별한 효과가 있더라도 너는 그것을 입증해낼리 없다., ‘케겔 운동 자격 시험이 있다면 불합격이확실하다. 어느새 앞의 모니터에는 거대한 젖가슴이 출렁대는 중이다.

  아침에 몽둥이가 천장을 향한지 오래다. 하루에 적어도 두 번.보통 세 번이 넘어가다보니 스스로 서는 법을 잃어버린듯 하다. 실실거리며 “20대 후반은 달라. 이제 몸 챙겨야 돼. 늙었다니까. 씨발 딸딸이를 쳐도…”라며떠벌리는 상상을 해본다. 몇은 억지로 웃어주겠지만 분명 스스로 몸을 던져 처량해지는 자학이 될 게 분명했다. 착각의 귀재인 너도 그것만큼은 충분히 직시할 수 있었다.

 

 더 이상 눈동자로 들어오는 자극으로 발기가되지 않았다. 언젠가는 파란 알약에 의존해야할 그날이 올지도. 그래도이 상황을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세상은 나아지는 중이고, 사소한부작용들은 자취를 감춘다.

 

 처음부터 몽둥이를 앞뒤로 움직이려면 아랫배가아프다. 우선 너는 왼손으로 쪼물딱 거린다. 서서히 부풀어오른다. 오른손 집게 손가락으로 방향키를 눌러가며 동영상에서 너와 가장 잘 맞는 지점을 찾는다. 서서히 서서히 부풀어 오른다. 그러다보면 몽둥이는 몽둥이답게 빳빳하다. 이제는 충분하다 생각이 됐을 때 너는 흔들기 시작했다.

 

 너는 처음 네 손으로 몽둥이를 흔들어 취했던 당시의 기쁨을 잊지 않는다. 강렬하고, 짜릿했던 중학교 2학년, 계절도 날짜도 기억에 없는 그 날, 새벽 두 시. 그 순간에 대한 향수이자, 현재의 결핍을 채우고자 하는 욕구와 같은말로 그 순간과 지금의 고리가 채워지고 해석될 수 있기를 바란다. (씨발 개소리). 삶이 피곤해야만 할 것 같은 강박. 그 것을 이기지 못한 너는수시로 흔들었고, 그럴수록 오르가즘은 인색하게 찾아왔다. 케겔운동도열심히 하면 피곤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너는 왜 못할까? 네게서 유익한 면은 점점 사라진다. (‘케겔 운동의 효용을 떠나 변비가 방치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있다.)       

 

 가게 화장실 휴지 옆에 붙여져 있는 스티커의부탁을 늘 거절했다.

변기에 화장지를 버리지 마세요. 수압이 약해 자주 막혀요

 

 똥이 묻은 휴지가 쓰레기통에 들어가 있으면숨을 쉬며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불편했다. 기어코 너는 변기에 휴지를 던지고 물을 내려야 직성이 풀린다. 정액이 묻은 휴지는 왠지 더 그렇다. 쏟아부어야 할 순간이 오면서둘러 일어나 엉거주춤한 자세로 네 다섯 걸음을 딛어 화장실에 들어갔다. 변기 앞에 서고 눈을 감았다. 나름 이것은 의미있는 행동이다. 성교육 선생님이 TV에 나와 한 말을 떠올린다.

 

지나친 자위 행위는 조루의원인이 될 수 있거든요. 자극에 무감각해지는 거에요. 바로끊을 수 없다면 조금씩 참는 버릇을 길러나갈 필요가 있어요.”

 

 변기 앞에 서기까지 대략 2~3초의 시간을 잘 참아내고, 언젠가 정력이 쓸모 있어질 훗날을도모하며 평안을 얻는다. 바닥에 흘리는 아이는 없다. 퐁당퐁당변기 안에 모두 골인이다 2주 동안 변기 옆에 걸려있는 휴지는 거의 몽둥이를 닦는 일에만 쓰였다. 몽둥이를훔치고 난 휴지를 변기에 던져 넣었다. 하얀 변기. . 그리고 검은 구멍. 너가 한 번도 직접 볼 수 없었던 너의 똥구멍. 어쩌면 저 검은 구멍은 너의 구멍과 많이 닮았을지도 모른다. 물을내리자 검은 구멍은  떠다니던 부유물들을 거뜬히 삼켜버렸다.    

 

 쾌감은 사정의 순간에 찾아오는 것일까, 내려가는 물소리와 함께 오는 관성일 뿐일까? 그때 친구H의 전화가 왔다.

 

 경남에서 올라온 H. 너는 늘 H를 보며 생각한다. ‘적어도저 새끼보다는 낫겠지’  먹는 것을  앞에두고 ,살 빼야 되는데, 미치겠다 라고 되뇌이다 볼록한 배를 만지며 후회하기를 반복하는 그는 한심하기 그지 없다.게으르고 또 게으른 놈이다. 고시를 준비한지 3년차이건만 1차 시험도 한 번 통과한 적이 없다. 항상 내년을기약하며 열심을 입에 달고 산다. 재수를 한 너보다 한 살 어리지만 경상도 특유의 우리가 남이가, 동기 아이가정신을 내세우며 입학 두 달만에 말을 놓았다. 뚱뚱하기는 하지만 서글서글한 인상은 제법 호감이다. 취업을 한 여자동기들도 녀석과는 가끔 만나고 연락을 한다고 했다. 너는 그럴수록 H를무시했다. 계집들이 못난이 데리고 노는 심리에 좋다고 따라다니며 얻어먹고 다닌다고 혀를 끌끌 찼다. 같은 처지가 H밖에 없어 자주 만나고 아가리를 털고 했지만, 너는 늘 생각했다.

씨발이 새끼랑 그만 놀아야 되는데

 

다짜고짜 수화기를 건너 H의 경남 사투리가 쏟아졌다.

 

 “야 병신 새끼야. 니 또 딸치쟤? 쳐 자고 새벽 5시까지 검은 옷 계통으로 깔끔하게 입고 나와라

(어찌 알았냐. 개새끼)뭔데? 지금 11시야 병신아. 어떻게 5시까지나가?”

 “개꿀이니까 나만 믿고 나온나. 여자 선배 중에 수빈 누나라코있거든. 그 누나 할머니 돌아가셨는데, 관 들 사람이 없다더라. 가서 좀 도와주자

 “모르는 사람 관을 왜 들어 씨발. 안해

야 병신아. 와서 도와주고 그러면 돈도 좀 쥐어주고 그러겠지. 그 누나 존나잘 산다. 할 거 없는 거 아니까 나온나. 학교 근처에 사는새끼가 니랑 나 말고 없잖아

 

 3시 넘어 잠이 들어 정오 무렵에 일어나낮 2시 즈음에야 일과가 시작된다. 게으른 것은 생각보다피곤한 일이었다. 강제로라도 아침을 살아볼 수 있는 계기가 필요했다.어쩌면 변비의 원인은 게으른 삶의 패턴때문 일지도 모른다. 늘 시도도 못하고 끝나지만, 부지런하고 성실한 삶을 지향하는 너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대뜸 말했다. 알겠어 병신아

 

 전화를 끊고 두 시간 가량 더 인터넷을 돌아다녔다. 그러고나서모처럼 맞이하는 새벽 해가 삶에 변화를 줄 수 있기를 고대하며 너는 침대에 누웠다.

 

 

저승사자

 

 일찌감치 일어나 천천히 샤워를하고 검은색 정장을 꺼내 입었다. 지퍼를 잡아당기기만 하면 되는 넥타이는 주머니에 넣고 집을 나넜다. 벌써부터 완벽하게 격식을 차리는 일은 불필요한 일이었다.

 천천히 준비하는 게 옳았다. H는 게으르다. 약속된 5시를훌쩍 넘어 시침과 분침이 맞닿으려 하는 5 28분이 되었다. 녀석은 건너편 골목에서 팔자 좋은 걸음으로 다가왔다. 살이 오른녀석의 정장은 터질 것만 같았다. 차라리 어깨처럼 보인다면 좀 있어보이련만, 그냥 살이 찐 것 같았다. 너는 그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H에게 분노하는 것은 어떤 시구처럼 이십원 때문에 야경꾼에게 화를내는 일과 비슷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H를 기다리던 28. 진정 너는 길바닥에 던져진 여섯 개피의 꽁초와 함께 너는분노를 던져버렸는가? 말없이 너와 H는 불을 나누고 담배를피웠다.

  

 “씨발 배신자들아

 

 저 높이 큼지막한 샹들리에가 걸려있는로비. 너희는 뒤를 돌아봤는데 두 학번 선배 J가 있었다. 이 새벽에, 게다가 장례식장에서 왜 저러지? 그런 표정을 지었다.

 

흠칫 당황한 그는 실실거리며 넉살 좋게 말했다.

 

 “ H, 이 씨발놈아. 그냥 검은 옷 입고 온다며. 이 새끼 완전히 빼입고 왔네. 씨불 좀 그런데. 니들 집에 남는 정장 없냐?”

. 저는 형이 셔츠는 입고 올줄 알았죠. 장례식 오는데 후드티에 좀청바지는 아니죠.” H는 입을 막고 애써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이 형이 공부를 하는라 살이쪄서 맞는 옷이 없다. 하하하. 씨불 검은 옷이면 됐지

형님, 그래도 장례식장 들어가는데, 마음 좀 다잡죠.”

 

 점점 걸죽해질 게 뻔한 대화의 양상을살피던 너는 불쑥 끼어들었다. 좋은 학교 나와서. 4 년째 노량진에서. 고시도 아니라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그의 고향은 충북 제천이다. 한 계절만 지나면 곧 서른인데, 여전히 잘 먹고 잘 놀고 있어서 그런지 지난번보다 체구가 더 좋아져 있었다.재수를 한 너는 J와 한 살 차이였지만 그를 형님으로 불렀다. 존경이나 진심은 결코 담지 않았다. 그저 형님이라 불러주면 관계를그럭저럭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있는 힘껏 대하면 손해인 ) J에대한 너의 판단은 그랬다.

 

 “아니 어제 저 새끼가 양복 입을거냐고 물었는데, 안입는다하더라고. 어차피 관 들려면 옷 편해야 하지 않겠냐고. 그런데너희 둘이 이렇게 차려입고 오면 이 형이 체면이 좀 그러니까…” 

퍽 진지해져 너에게 하소연하는 J.  H는 그를 향해 배를 쥐어잡고 낄낄거렸다.

 형님…” 너는 아이를 달래듯, 집게 손가락을 코에 가져다대며 말했다.

알겠어. 역시 기자 양반. 예의를 알아. 경조사에왔으면 예의를 지켜야지. 하여튼 쌍도 촌 상놈 출신이라 H 저새끼는 예의를 몰라.”

 J의 투덜거림을 마지막으로, 너희는 함께 박지봉 할머니의 빈소로 향했다

 

  죽음은 병적이다. 하지만 너희는 병을 마주하자 서둘러 받아들이고 쉽게 적응했다. 한 노파가 담긴 영정. 입꼬리가 온화했다. 큰 병 없이 노환으로 돌아가셨다고 했다중국의 다이빙 선수들은 우수하다. 수면에정말 작은 파문만을 남긴다. 그녀의 죽음도 꼭 그랬을 것만 같았다. 사진기사의능력일까 아니면 그녀의 삶이 반영된 것일까? 영정은 꽤나 많은 말을 하고 있었다. 빈소에는 열 명 남짓의 사람들은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다. J가 한여자와 눈 인사를 주고 받았다. 처음 보는 선배 누나는 제법 예뻤다.J의 눈짓을 확인하고 나서야 너희는 주뼛주뼛 뒤쪽에 섰다. 고등학교를 가기 전까지 교회를다녔던 너. 너는 아는 찬송가가 나오자 흥얼대듯 따라 불렀다.

 

 “야 너 이 노래 아냐?”  오랜만에 만나 들뜬 J가 너의 배를 슬쩍 찌르며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숙변으로 더부륵한너는 그가 더욱 경박스럽게 느껴졌다. 대답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HJ를 거들었다. 몰랐어요?저 새끼 존나 나일롱 개독이에요 흐흐”  여기에 진지하게 화를 내면 결국에는 서로 웃음보가 터지는 민망한상황만 맞닥뜨릴 뿐. 너는 입을 꾹 다물고는 너와 교회 사이의 부조화를 갖고 키득대는 그들을 향해 고개를끄덕였다.

 

 목사님의 죽은 자를 위한 기도(과연?)가 마치자, 발인예배가 끝났다. 너는 침통한 표정으로 아멘을 말하는 그에게서 진심보다는 능숙함을 느꼈지만 이는 본래 당연한 일이었다. 설교같은 거는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해놓고 서는 금세 그 약속을 깨뜨리는 사람들. 아침 여섯시에 얼마 만큼의성실함과 진실됨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흩어졌고 장례를 주도하는 몇 만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선배 누나가 다가왔다. 피부가 좋아서 가까이 다가올수록 더욱 예뻐 보였다. 저 쪽에는 그녀의어머니인듯한 여자가 교회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TV에 나올 것만 같은 고혹적이고 우아한사모님의 자태. 그녀의 미모를 물려받았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매력을 얻어나가리라누나가 너희에게 오는 것이 분명해지자J가 서둘러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누나 미안해요. 제가 정장을 입고 와야 되는데 고향에 놓고 와가지고. 너무 미안해요

에이 무슨, 이 새벽에 와준 게 어디야. 오랜만이다. J, 정말 고마워.” 이어서 그녀는 너와 H에게로고개를 돌리더니, 처음 만났는데 부탁부터 하게 되네요. 반가워요. 그리고 잘 부탁할게요

꾸벅 인사를 하는 너희 앞에 J가 끼어들었다. , 뭐 당연히 우리가 도와야죠. 후배 둬서 뭐에 쓰겠어요? 제가 아끼는 동생들이니까 맘대로 부리세요.” 

, J, 고마워”  

 

 할머니는 아흔이 넘도록 살았다. 장수를 누렸다. 아침 AM6:10   J대학교병원 장례식장의 세상은 죽음에 충분히 익숙해져 있었다. 거대한 혼란도 여기에 오면 행복과 평화로 수습될것 같았다. 아무도 호상이라는말을 주의없이 꺼내는 이는 없었지만, 모두가 슬픔에 잠길 일은 아니라는듯 움직였다. 웃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입을 꾹 다물었다. 한바탕웃음이 터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그곳이었다. (굳이 변명하는 일은 정말 불필요했으니까, 안슬펐다면 슬펐다고 치고)   

 

운구하실 분들 모여주세요 구석에서 들리는 굵은 목소리. 누나는 점점 신이나서 최근의 근황을 전하던 J 에게 눈짓을 보냈고, 너희는 J를앞장 세워 시체를 옮기러, 아니, 운구하기 위해 움직였다. 후드티에 청바지를 입은 J가 조금 거슬리기는 했지만 당당한 걸음걸이의검은 무리는 제법 폼이 났다.   

 

 

1: 29:300

 

 교외는 공기가 쾌청했다. 본래 자기는 시골놈이라 한적하고 고즈넉한 것을 좋아한다는 H는 연신숨을 들이켰다. 가평을 지나 산등성이에 있는 가족 묘지. 뒤에는산이요, 앞에는 물이 흐르니, 뭘 모르는 작자도 좋은 곳이야라고 떠들어댈 수 있는 곳이었다. (전쟁이 터지면 이곳에 와서 숨겠다.) 고조 할아버지. 고조 할머니. 증조 할아버지. 증조할머니. 할아버지. 작은 할아버지. 요절한 삼촌과 숙모들 몇몇. 할아버지와 그의 둘째 아들 무덤 사이에는할머니, 누나의 아버지, 어머니가 묻힐 자리가 비워져 있었다. 다시 여기에 올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너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을어떤 핏줄들이 묻힐 곳. 괜스레 너는 안면을 튼 누나가 묻힐 자리를 가늠해 보았다.    

 

 한참 전부터 목장갑을 만지작 거리며 지시를기다리던 인부들이 땅을 파기 시작했다. 봉분이 만들어지면 양잔디를 붙일 업자는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너희는 검은색 운구차 트렁크에서 관을 꺼냈다. 하이얀 명주 띠를바투 잡고, 조심히 땅 속에 내려 놓았다. 사람들은  찬송가를 불렀다. 상주이자 장남인 누나의 아버지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영정사진을 품에 안은 누나는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다. 우아한 누나의 어머니는 조용히 찬송을 읊조렸다. 담담하게 이어지는 부잣집의 장례식. 돌아가신 할머니의 아픈 손가락이었을것만 같은 갓 쉰을 넘은 늦둥이 막내 딸이 눈에 띠었다. 다른 형제들에 비해 유난히 주름이 깊은 그녀. 땅 속에 들어가서는 관을 부둥켜 안고 울부짖었다. 엄마, 이렇게 보낼 수 없어. 안돼…”  그녀의 눈물은 남다르게도 울음을 불러냈다.하지만 길고 풍부하고 끈질기고 어지럽지는 않았다. 흙을 덮던 인부들은 이런 상황이 익숙한듯, 당황하지 않고 잠시 삽을 땅에 꽂았다. 시간은 꽤 지체되었지만 아무도그녀를 욕하거나 힐난하지 않았다. 재촉하는 이는 없었다. 갑자기곡소리가 터져도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이 정도의 해프닝 조차 없었다면 장례는 너무 평온하기만 했을터였다.

 

 식구 중 엄마만이 교회를 가는 너는 십자가를안고 하는 장례가 처음이었다. 순서를 밟아갈 때마다, 그것을마칠 때마다 하는 기도가 꽤나 번거로웠지만, 생각보다 슬픔이 보이지 않는 그곳에는 크게 방해 되는 일은없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둥그스름하게 봉분이 쌓아올려졌고, 촘촘하게 잔디가 붙었다. 지나치게 푸르른 무덤은 계절에 맞게 누르스름해진무덤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튀지 않고 조용하셨다는 돌아가신 무덤의 주인의 성격을 생각해볼 때 이번한 계절만 보내면 이곳에 녹아들 것이었다.

 

박지봉(朴智奉) 1922. 10. 20~2014. 11.01- 이라고 새겨진 단촐한 비석이 섰다.  마지막,정말 마지막 기도를 마치고 나서야 장례가 끝났다. 3시간 여의 의식이 따분했던 나머지 너희셋의 몸짓에는 기쁨이 묻어나오고 말았지만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흡연자들은 삼삼오오 귀퉁이에 모여담배에 불을 붙였다.   

 

 새차게 뿜어지는 연기들. 할머니의 귀신은 자신의 죽음이어떤 기념일이 되길 바랐을까? 어쩌면 그녀의 영혼은 생전 성격답지 않게 내달리고 질주하며 소리를 꽥꽥지르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그래봤자 영혼의 무게가 21그램이라고했던가? 육신에서 떨어진 영혼은 아무런 흔적도 없다. 그녀가그나마 조금이라도  더 기억되고자한다면 조용히 구만리장천을 날아, 흙에서 흙으로, 재에서재로, 먼지에서 먼지로, 자연의 순리에 굴복하는 게 최선이다. 불평, 불만은 쪼그라든 노인내에게는 사치다. 알몸으로 스틱스 강, 아니 여기에서는 황천을 건넜다 때에 맞춰 돌아와잿밥을 얻어먹고 남은 이들의 복을 기원하는 일. 그것은 누군가 빨아들인 그녀의 본능이 있던 그 자리에가져다 놓은 관성이었을 것이다. 할머니는 복받은 여인이었다. 참으로호상이었다.

   

 한 나절을 같이 있다보니 낯들이 익숙했다. 평범한 사람에게는 평생 남의 눈초리가 떠나지 않는다. 맞담배를 피우고인사를 나누며 모두는 범인들의 수치를 나눠 가졌다.

 

 “ 어떤 사이세요?”     

 “ 저희는 할머니 맞손주 대학 후배들이에요.” 오랫동안 묻기를기다려왔다는듯 J가 넙쭉 말했다.

 “ 아 수빈씨 후배들이시구나. 저희는 상주님 회사 직원들이에요. 그러면 J대 나오셨나보네요. 다들엘리트들이시네.”

에이, 요즘 학벌이 먹히나요 뭐.” J는 어꺠를 으쓱했지만 한편으로는 제 상황에 한숨을 푹 쉬며, 연기를 뿜었다.  

와 씨발, 존나 많이 죽었네. 100 명이 넘었어. 와 자꾸 이런 일 터지네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다 흠칫 놀란듯한 H가 말했다.

몰랐냐. 씨발. 새벽에 무너져서 다행이지.아 진짜 지구 멸망하는 거 아냐?” J가 요란하게 말을 이었고 누나의 아버지 회사 직원들이 몇 마디 말을 보탰다.

 

 공무원 시험에 연신 낙방하는 JH는 한 목소리로 경직된 공직 사회를 지적했다. 우리에게 처음 말을 걸었던 이는 처음에 허가가 나지 않았던 건물을 무리하게 지은 재벌 시공사와 지난 정권을탓했다. 건물이 무너진 이유에 대해 아무 거나 갖다 붙여도 될 것만 같았다. 너는 누구나 조금씩 안개에 주식을 갖고 있다라는 시구를 떠올렸다. 누구든지 이 사건에 대해 조금씩은 책임을 갖고있으리라. 본래 이럴 때 있는 척을 잘 하는 너는 죽은 사람들에 대한 애도와 슬픔을 말하려 했다. 지금 이 혼란을 설명하는데 안개라는수사는 딱 들어맞았다. (갖다 붙이기. 너 다웠다.) H는 더욱 움츠러들 주식과 부동산, 이어질 장기 경기 침체를 예언했다. 이를 이어받은 J는 지난 사고들과 비교하며 사상자들의 보상금이 얼마일지를추정했다. 다른 이들은 자동차 사고와 선박 사고, 비행기사고, 생명보험, 화재 보험등등. 각각의 지식을 보탰고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살아가는 일은 험난해질 것이라는 공감만이 확실했다. 이는 갑자기닥친 사고 앞에 서로에 대한 위로일 수도, 안도일 수도 있었다. 대뜸끼어들지 못하고 주저하던 너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묘한 기분을 그대로 표정으로 드러냈다. 너는 하려던말을 다시 삼켜버렸다.   

 

 꽤나 긴 시간 침묵을 지키다 말문이 트이자신이 난 J. 그런 J를 보는 것을 즐기는 H와 사람들은 망조가 든 나라에 대한 한탄을 계속했다. 마치 멸망을즐기는 것만 같았다. 한 번 타이밍을 놓친 너는 떠들썩한 분위기에 끼어들지 못했다. 스마트폰을 보며 계속 대화의 소스를 던지는 H가 말했다. “하인리히의 법칙? 이건 뭐냐?”너는 대충 알고 있었지만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에 머릿 속에 너만의 생각의 연쇄를 만들었다. 점점 잡탕으로 변해가는 대화로부터 도망칠 심산이었다. ‘하인리히법칙은 당분간 언론사 상식 문제에 단골 문제로 출제될 게 확실했다.‘한 가지 대형 사건 이전에 29가지 소형 사건, 300여가지의 징후들이 계속된다.’ 하인리히 라는 이름은 괜스래 독일의 영리한 축구선수의 모습을 떠오르게 했다. (역시나 너는 깊이 있게 알지 못한다.) 하여튼 1: 29: 300. 어제 무너진 건물은 1에 속할까? 29에 속할까? 아니라면 300?

 

 29라면 적어도 다가올 1은 나라 하나가 망할 정도의 충격을 줄 것이다. 300이라면 지구가멸망할 지도. 세상의 끝은 어떤 모습일까? 어쨌든 그것은완벽할 수밖에 없다. 명문 대학을 나왔다. 부모님은 네게사랑을 준다. 언젠가는 절세 미녀에게 네 몽둥이를 사용할 날이 올 것이다. 세상에는 보지 못한 몰카와 야동이 넘쳐난다. 변비는 여전히 해결될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많은 것들이 걸려 있다. (너는 그랬다.) 그런데 필사적으로 살아야 할 이유가 잡히지 않았다. 아무 것도아니었다. 슬퍼져야만 정상일텐데, 도리어 쾌감이 몰려왔다. ‘어제의 사고가 1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300 중 하나였으면 더욱 좋겠다세상에는 불행과 비참함이 가득하다. 악마의 얼굴이다. 세계가 멸망한다면 다툼도 타협도 남지 않는다. 합격도 불합격도, 구직자도 백수도변비도 쾌변도, 딸딸이도 섹스도모두 동등하다. 천사도 마귀도 함께 죽는다. 완전히 평등한세계가 남을 뿐이다.  

 

나는 어차피 죽어. 그러나 나만 죽는 것은 억울해. 다같이 망한다면, 죽는다면 괜찮을 것 같은데’   

 

 걸음을 뗀 상상은 점점 간절한 기원으로변해갔다. 돌아가신 할머니도, 어제 죽은 100 명이 넘는 사람들도, 지금 황천에 몸을 적시고 있을 수많은영혼들도 더 이상 동정과 슬픔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들은 새로운 세상,새로운 끝의 출발점이다(일 수도 있다). 가깝게느껴졌다. 생각에 취할수록 너가 갖는 세상에 대한 지분은 줄어들었고 안개의 농도는 옅어졌다. 사명감도 죄책감도 없는 고추 달린 아이. 그렇게 너는 퍽 유쾌했고고개를 들어 하늘을 향했다. 눈동자가 빨갛게 반짝였다.

 

 하지만 오래 가지는 않았다. 눈 앞에 내밀어진 하얀 봉투가 달콤한 꿈의 끝을 알렸다. 이상한패배감은 잠깐이었다

 

 

즐겁게 똥을 싼 이는 즐겁게 똥을 싸지 못했던 이였다.

 

 PM 2:00 전세 버스가 청량리에 멈추었다. 너희가 터벅터벅 걸어나왔다. 기운이빠진 너희는 부쩍 초라해보였다. 유가족들은 간단하게 고마움을 전했고,너희와 악수를 했다. 버스가 떠나고, 너희만남은 것이 확실해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푸념을 시작했다. 누나의 아버지, 사장님이 건낸 흰 봉투에는 5만원 짜리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사는 집이 너무하네. 씨발! 겨우 5만원 넣었어

 “씨부럴 지랄맞네. 딱최저임금 정도 줬어

형 장례식 하면 축의금으로돈 좀 벌지 않아요?”

병신아 부조금이지 축의금이뭐냐? 이 새끼 대가리 빠가 새끼

 

 너희는 시시덕거리다 냉큼 담배를 물었다. 한 곳에 집중을 못하는 천성이었는지 담배의 미미한 환각 성분에서 비롯되었는지 대화의 흐름은 맥이 없었다. 이래서 대한민국이 안된다는 말을 연신 내뱉던 너희들은 어느새 누나와 누나의 엄마의 외모를 이야기했다. 지금도 건재한 청량리 오팔팔 방향을 향하다 장안동 안마방의 영광의 시절, Live69 tvZotto tv의 치열했던 경쟁을 추억했다.

 

 HJ는오랜만에 만난 만큼 술 한 잔을 바랐다. 담배 한 개비가 타들어가는 동안 더러워질수록 강해보이는 분위기는고취되어 있었다. 천박함을 떳떳함으로 위장하는 데 술은 만인이 인정하는 좋은 핑계거리였다. 그런데 너는 거부했다. 그것이 싫어서가 아니였다. 너는 할 것이 있었다. 그래서 씨발 새끼 또 비싼 척 하네.”라는 힐난을 한 귀로 흘릴 수 있었다. 니트를 주문해야 했다. 토요일에 입으려면 금요일에는 받아야 했다. 사실 내일 아침 일찍해도 된다. 술자리에서 핸드폰으로 할 수 있고, 술을 먹고집에 가서 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충분히 여유를 부릴만한 일에 절실해지는 게 너였다. 그래서 너는 왜 이렇게 바쁘게 사냐는 말을 많이 들어오지 않았던가. 그들은강하게 거부하는 너를 띠껍게 여기며 설득하기를 포기했다. 너는 그들과 다음을 기약하며 작별을 하고 은행으로향했다. 흰 봉투에서 5만원을 꺼내 ATM에 집어넣었다. 오늘 내내 죽이 잘 맞았던 JH. 아마도 둘이서는 술을 먹지 않을 것이라는 너의 예상은 맞았다.

 

 4 1천원이남았다. 정확히 41,540. 돌아오자 마자 너는 Buy를 클릭했고, 가상계좌에 입금을 완료했다. 79,000원의 버건디 색 울 니트는늦어도 금요일 저녁이면 배송된다. 아마 술값은 회사를 다니는 아이들이 나눠 낼 것이다. 가장 최근에 취업을 한 녀석이 다 쏠 가능성도 있다. 그래도 어떤일이 닥칠지 모른다. 현금 4만원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존심을지켜줄 충분한 돈이었다. 내일이든 모레든 4만원은 인출해지갑에 넣어 놓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참 오랜만이었다. 습관적으로 라디오 뉴스 어플을 틀었다. 익숙한 여자 아나운서의 목소리. 볼륨을 최대로 높이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커버를 올리고 변기에 앉으며담배를 물었다. 예감이 좋았다. 워낙 대형사고였다. 뉴스는 특보 형식으로 같은 소식을 반복해서 전달했다. 사망자는 하루사이 두 배 가까이 늘어 있었다. 아나운서는 수도의 도심에서 일어난 사건에서 조차 미흡한 대처가 나타나고있다며 분개했다. 냉정을 잃은 모습이 너는 조금 거슬렸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변기에만 앉으면 스르르 빠져 나가던 힘이 여전히 몸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힘을 주었고 그것을 아랫배로, 그리고 더 아래로 보냈다.힘이 이동할 때마다 조금씩 손실이 있었지만 크게 일을 그르칠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임계치이상의 힘이 전달됐다. 2주만이었다.

 

 오른손에 하얀 휴지를 말아쥐었다. 시원하게 묻어나왔다. 너는 두차례 작업을 반복한 후 변기 속에 던져넣었다. 휴지가 보기 흉한 배설물들을 덮어주었다. 변기가막힐 것만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수압이 약한데... 찜찜했지만지금은 시원한 기분을 만끽하는 게 우선이었다. 꼭 물이 잘 내려갈 것만 같았다. 변기는 지난 15일동안의 고생을 다른 누구보다 잘 아는 존재였다. 너는 물을 내렸고 가뿐하게 화장실 문턱을 넘었다.

 

 여자 아나운서가 실낱같은 희망을 말하고있었다. 쌀쌀해진 날씨, 큰 폭발, 6시간 동안 계속됐던 화재를 언급하며 그 희망이 매우 작을 수밖에 없음을 언급했다. 결국 그녀는 울먹이고 말았다. “병신같은 년. 아나운서가 그렇지 뭐.” 언제부터인가 우는 앵커들이 늘어났다. 너는 경멸했다. 아니 경멸하는 척 했다. 저널리스트의 프로 의식 부족으로 치부했다. 그게 네 생각은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떠드는 소리를 종합하여 낸 결론이었다. 그러니 욕 한마디에 아나운서라는 직업의 필요성에 대한 의문 , 여자를 향한 무시 등이 잡스럽게 섞인 것이었다. 바로 너는 방송국, 신문사에서 일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 속에서 너는 원칙을 지키고 냉정함을 유지하는 언론인이 되어 있었다.

 

 실컷 아나운서를 욕한 후 상상 혹은 허상속에 빠져들어 갔을 때, 변기는 힘겹게 휴지와 배설물을 삼키고 있었다.깔끔하게 모든 것을 꿀꺽 넘겨 버린 후, 변기는 공기 방울 두 개를 차례로 뱉어냈다. 꼭 딸꾹질을 하는 것만 같았는데

 도대체 왜 그랬을까? 여러가지 가정을 세울 수 있다. 변기가 딸꾹질은 해도 울지는 못할거야? 오랜만에 너무나 버거운 양의 똥을 처리해서 그랬을 수도. 감정에빠진 여자 아나운서를 맹렬히 욕하는 너를 보고 겁에 질려 그랬을지도 모른다. 경험이 없는 나머지 상상력이빈곤하다. 너는 곧 모니터 앞에 앉았다. 아마 몇 분 안에몽둥이를 만지작 거릴 것이다. 기분이 나쁘지 않은 너는 다른 날보다 신이 나서 흔들어 댈 게 분명하다.

 

 역시나 너를 설명하기에는 화장실이 제격이다. 너는 잘 알고있다. 여전히 원인은 해결되지 않았고 변비는 또 찾아온다. 너는 아직 28이고 내년에 29이니까별로 그렇게 죄진 게 없다고 믿었다. 아직 당당해도 좋을 때였다. 언제나화장실 만큼은 즐겁게 만들 녀석이다.

 

 

 하늘에는 여전히 붉은 별이 떠 있다. 틀림없이 별을 마주한적이 있을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런데 너는 아무 말이없다. 나는 다른 무엇보다 이게 진짜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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