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방송- 1000명을 태울 수 있는 노아의 방주-대본 1 팟캐스트 황당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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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앞둔 인류. 10,000명 만이 탈 수 있는방주가 있다추첨을 통해 탑승할 사람을 고를 때 흉악범들에게도 추첨에 응모할 기회를 줘야할까?

 

강창희

처음  질문을 들었을 제가 바로  생각은 태워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제가 최근에 <내일을 위한 시간>이라는 영화를 감명 깊게 봐서그런걸까요 질문은 제게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이로운 정의로운 것을 모두 추구하고 살아야 한다그런데   개가 충돌한다면 무엇을 선택할래?' 라는 질문과 같은 말로 들렸습니다저는  가지가 충돌했을 , '인간적인선택은 정의로운 것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우리(혹은 인류) 살아온 역사가 인간적이 되는 과정이었다면그것은 우리가 '정의로움' 선택해왔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박동희

 질문을 듣자마자 떠오른 인물들이 있었습니다강호순유영철오원춘연쇄살인범들이죠그들을 태워선  된다는 생각이 직관적으로 들더군요.

곰곰이  이유를 생각해봤어요 직관은  그런 식으로 반응했을까.

 

아마도 저는 '정의'라고 하는게  '인간다움'만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그런  같아요.

연쇄 살인범같은 흉악범을 응당 처벌하는 것도 정의의 덕목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타인의 생명을 여럿 빼앗았어요.

정의를 지키기 위해선 법으로 그들에게 합당한 처벌을 가해야 하죠.

현재 우리나라에선 그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렸죠언젠가는 형법으로 그들의 목숨을 끊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만약 노아의 방주에 태울 10000명을 추첨할  분명히 현행 제도의  안에서 이루어지겠죠.

사형 제도 역시  시스템  하나일테고요.

 

언젠가 사형을 당할 사람들에게 굳이 추첨권을 주는게 맞는 건지 의문이에요어차피 방주에 가서도 같은  제도를 유지한다면 사형시킬 것인데 말이죠흉악범을 태우지 않는 선택도 창희씨까 말한 '정의로움' 추구하는 길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문제는 흉악범의 범주를 정하는 일일 텐데요그게  애매하네요감정적으로직관적으로 정해버리기엔 너무 위험 요소가 많은  같아요.

 

 

강창희

  애매함을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광기의 역사] [감시와 처벌]이라는 저서에서 다루고 있는  같아요미치지 않으려는 필사적인노력 자체도 하나의 광기인지 모른다" 라는 파스칼의 말로 그의 저서는 시작합니다.

 

푸코는  책에서 '광기' 어떻게 정상 사회에서 배제되고 감금되며 결국은 치료되어야  ''으로 되어가는 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광인'이나 비정상적인 사람들도 정상인과 공존하던 시기가 있었죠하지만 16세기 '이성' 강조되면서 수용소에 감금되는 상황이 만들어집니다푸코는 이런 식으로 광기의 역사를 통해 우리의 무의식(에피스테메인식틀) 변모를 보여주고 광인이 타자로서 배제되고 침묵하게  과정을 드러내며광기와 이성 사이에 그어진 경계선을 허물려고 합니다.

 

조금 말이 길어졌는데요결국 푸코의 이러한 연구의 시도는 현재 포섭과 배제의 선을 긋는 '이성'이란 존재를 상대화시키고이성과 비이성의경계가 역사적으로 달라질  있음을 주장하고 있죠그의 논리를 적용하면 우리가 논의 중인 흉악범과 정상인의 범주도 상당히 불안정하고 자의적인 틀로   있을  같습니다.

 

 

 

 

 

 

 

 

박동희

과연 푸코가 설명하려고  정상/비정상 구분의 자의성과,

흉악범(유영철조두순 )/정상인 구분에 대한 자의성이 같은 범주에 놓일  있을지 의문입니다.

 

후자의 경우는 정상/비정상보다는 죄인/비죄인의 구분에 가까울  같습니다.

 

죄인과 비죄인은 그들이  행위를 놓고 결정되기 때문에 어느정도 명확한 분류라고 생각하는데요.

타인의 자유를 얼마나 훼손시켰느냐에 따라 처벌의 강도는 결정될 것이고요.

애매한 것은  부분인  같아요.

흉악범/그냥 범죄자.

 

아무래도 우리   범죄자에겐 기회를 주자는 생각엔 일치하는  같아요.

흉악범부터 갈리는  같아요.

저는 범죄자는 된다하지만 흉악범(사형수(?)) 안된다

창희씨는 흉악범에게도 기회를 줘야한다.

 

 

강창희

 저는 그래도 흉악범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푸코는 그러한 경계를 설정하는 '이성' 존재를 '권력'이라는 것과 연결시켰는데요그렇다고 권력 자체를 부정하는 세상은 상상할  없겠죠.우리는  '권력' 어떻게 사용해야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윤리학' 문제로 다시 나아갈  있을  같습니다.

 

앞에서 말했던 역사의 발전을 '인간다움이 되는 과정'이라는 말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 말이겠네요노아의 방주를 만드는 상황은 일상적인 상황이 아닙니다. '구원' 희망케 하는 매우 '예외적' 상황입니다지금의 질서가 정지되고 비상상태가 선포된 시간이죠.

 

저는 이러한 예외적 상황은 우리가 '역사는 진보한다' 가정 아래 지켜온 가치(도덕과 같은 가치) 순식간에 '아무 것도 아닌 '으로 돌릴 있는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그때 우리가 이러한 상황에서 택할  있는 최선의(극단적인?) 윤리적 선택은 살아있는 존재 누구든 ‘제대로 살아있도록’ 존중하고  되라고 도와주는 것이 아닐까요?

                   

다시 말해서 저는 인류의 종말이  앞에 있는 비상 상황에 대한 인간의 가장 윤리적인 대응은 우선 우리가 생각했던 질서 자체를 '' 돌리고질문을 던지는 과정을 전제한다고 생각합니다지금 우리가 만들어온 역사 자체를 근본적으로 의심해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겠죠어디까지나 정상/비정상흉악범그냥 범죄자를 나눈 행위 자체도 지금 우리가 영위해온 질서가 계속된다는 전제 아래에서 설정된 것이니까요.

 

 

박동희

: '지금의 질서가 정지되고 비상상태가 선포된급박한 순간에 과연 우리가 지금까지 쌓아온 체계와 제도에 대해 의심할  있는 시간이 있을까요?

본인의 생명이 위급한 상황에서 오히려 그런 윤리적인 고민들은 더욱 무의미해 지지 않을까요?

 

현재 우리가 따르는 시스템은(물론 부족한 부분도 있겠습니다만대다수 시민들의 합의 하에 구성된 것이죠.

대안이 없고 대안을 고민해야  시간도 부족하다면  체제를 따르는게 맞지 않을까요?

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창희씨가 말한 '인간다움'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 아닐까요?

 

 

강창희

동희씨의 의문이 충분히 설득력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메시아 예수가 말했던 유명한 '사마리아 이야기가 있습니다 위에 죽어가는 사람이 있는데 법적종교적 권위를 가진 바리새인레위인을이를 외면합니다대신에 공동체 질서로부터 벗어난 존재였던 사마리아인이 이를 도와줍니다예수는 이러한 사마리아인을 우리의 이웃이라고 합니다그리고 구원을 받기 위해선는 ' 이웃을 사랑하라' 말합니다.

 

저는  위에서 '누군가가 죽어가는 순간' '인류가 종말을 앞두고 노아의 방주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예외적인 점에서 같다고 생각합니다그때 우리가   있는 윤리적인 선택은 지금까지 구축해온 어떤 질서를 부정하는 가운데 이루어질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제가 말한 지난 시간까지의 체계와 제도에 대한 의심은 깊고 엄숙한 사유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대로 '비상예외적인 상황'에서 즉흥적인 형태로 발생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위에 죽어가는 이를 도운 사마리아 인이 당대의 대학자나 현자가 아니라비천한 존재였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요.

 

 

박동희

공상 과학 영화처럼 그들이 가진 의식체계와 기억이 방주에 타지  사라진다면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회화된 인간의 무의식 속엔 옳고 그름을 가르는 합의된 직감이 있을 거에요 직감에 대한 믿음도 있을 것이고요.

 직감에 대한 믿음이 무너진다면 방주엔 아노미가 오겠죠얼마 못가 침몰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 방주 속에 유영철과 조두순이 앉아 있다고 가정해 볼게요.

그들의 흉악한 범죄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있을까요?

 

우리가 가정한 질문은 인간의 '구원' 목적인 특수한 상황이라고 하셨습니다만약 그렇다면 이상적인 고민보단 오히려 방주의 혼란을 막는 현실적인 수단들을 강구하는게 맞을  같다고 생각해요.

혹여 그들을 태운다고 해도 지금처럼 격리시켜야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대안이 없다면 지금 제도가 추구하는 기본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틀로써 노아의 방주를 운영하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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