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방송- 1000명을 태울 수 있는 노아의 방주-대본2 팟캐스트 황당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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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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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앞둔 인류. 10,000명 만이 탈 수 있는방주가 있다추첨을 통해 탑승할 사람을 고를 때 흉악범들에게도 추첨에 응모할 기회를 줘야할까?

강창희

 

방주 속에서 흉악범들은  높은 비율로 범죄를 저지를 것이다라는 전제가 합의가 되었는지요?

동희씨가 말한 것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것입니다동희씨가 말한 '정상적인 이라는 것도 제가 받아들이기에는 기존의 우리가 살던 삶의 체계가 연장되는 것이고그렇지 못하다면 그것은 비정상이 되는 논리로 받아들여 집니다.

가정의 상황아노미대혼란일어날지 모릅니다최악의 상황이죠하지만 최악을 가정해놓고 그럴지도 모르니 하지 말아야 한다는 식의 방식은 수긍하기 어렵습니다니체가 저작 안티크라이스트에서 그리스도교를 '다음 세계' 상정해 놓고 현재의 삶을 사랑하지 않는다며 노예라고강렬하게 비판한 것처럼… 우리가 가정한 방주는 어떤 세계를 만날지만들지 모릅니다지금  토론을 논하는 우리  사람은  출발을 설정할  있을 뿐이죠그렇다면  시작은 우리가 택할  있는 가장 최상의 윤리에 의해 설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리고  최상의 윤리는때로는 합리적 이성때로는 합리적 폭력의 형태를 띠었던동희씨 말에 따르면 '합의된 직감' 지우고 생각하는  먼저 라고 생각합니다.

 

 

 

박동희

저는 흉악범들이  높은 비율로 범죄를 저지를 것이다'라는 전제를 가정하진 않았습니다.

그런 전제를 가정해버린다면 영화 마이너리티리포트의 상황이 되겠죠저는 분명 그런 전제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혼란을 겪을 것이라고  이유는 보편적 '상식' 무너질 것이라는 측면에서 였습니다.

죄를 저질렀으면 처벌을 받아야죠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상식은 무너집니다.

창희씨의 이야기를 듣고 떠오른  바로 친일파 청산 문젭니다.

독립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마주했고이는 방주의 상황과 어떤 의미에서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과거 범죄를 저질렀던 친일파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현재 독립운동가들보다 잘먹고 잘사는 친일파들을 보고 있죠.

                   

 결국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상식은 무너졌죠저는 사회 곳곳의 문제들이 대부분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에 시작됐다고 생각합니다.우리 사회는 옳은 것을 쉽게 옳다고    없고옳은 행동을 하라고 권유할 수도 없게 됐습니다.

 

마찬가지 아닐까요 사회가 방주든독립  대한민국이든완벽히 새로운 세계는 존재할 수도상상할 수도 없습니다과거의 문제를 안고  밖에 없다는 이야깁니다그렇다면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고 출발하는  맞지 않을까요엄청난 범죄를 저지르고도 떳떳하게 방주속을 돌아다니는 흉악범들을 보면서 우리는 인간다움을 운운하고정의로움을 운운할  있을까요?

 

그리고 지금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것과 니체의 노예 이야기는 다른 문제 같습니다.

 

사후세계내세는 니체의 입장에서 있지도 않는 말도 안되는 일이겠죠.

하지만 유영철과 강호순이 돌아다니는 방주  사람들이 겪을 아노미는 니체 역시 충분히 예측가능한(있을 법한현실적인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을 가정하고 생각하는 것은 '노예' 사고라기 보단 앞으로 있을수도 있는 문제를 대비하는 것이겠죠때문에 저는 말미에 태운다고하더라도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격리시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그런 상황은 최악의 상황이야있지도 않을 일을 미리 걱정하지마,식의 태도는제가 보기에 조금 무책임한  같습니다.

 

 

롤즈는 사회 구성원의 보다  선을 위해 소수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정의의 관점에서 옳지 않다고 했습니다.

때문에 내일 죽을  모르는 시한부장애인푸코가 말한 사회가 자의적으로 낙인찍은 비정상인 등을 추첨권에 포함시키는 것은 맞다고 봅니다.

하지만 흉악범을 소수라고 말할  있을까요그들을 격리시키는게 단지   선을 위해 소수를 희생시키는 것이라고 쉽게 말할  있을까요?

 

 하나 저는 창희씨 말을 듣고 '설국열차' 떠올랐습니다.

위급한 상황에서 새로운 체제를 설립하는 것은 오히려 인간다움을 말살시킬  있지 않을까요?

제가 엄청 보수적인  같네요.

저는 지금껏 인류가 쌓아온 이성과 정의에 대한 믿음을 신뢰합니다.(그보다 훌륭한 대안이 있다면 모르겠지만요)

 

강창희

:동희 씨가 말한 롤즈의 사회구성원의 보다  선을 위해 소수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정의의 관점에서 옳지 않다는 말이 어떻게나왔는지 보충 설명을 듣고 싶네요^^ (논지에는 동의를 하지만 어떻게 그런 말을 했는지 궁금해서요.)

 

그리고 영화 설국열차는 현재의 폭력성을 가진 시스템(달리는 기차) 일단 멈춰라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인  같은데,,, 그러니까 설국열차는 우선 현재의 시스템에 대한 전방위적이고 실천적인 거부를 긍정하는 영화인  같은데동희씨가 새로운 체제를 설립하는 것은 오히려인간다움을 말살한다는 메시지에 영화 '설국열차' 어떻게 해석될  있는지 궁금합니다.

 

 



박동희

저는 설국열차는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세상에 추구해야  가치가 많다효율발전생존 등등.(윌포드나 틸다 스윈튼의 입장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가장 우선적으로 지켜야  것은 무엇인가.

인간을 인간의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는 .

롤즈의  마따나  선을 위해 소수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 태도.

그리고 타인의 고통을 지나치지 않는 컴패션.

 

영화 시작부터 계속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그리고 기차에서 윌포드가 커티스를 설득시켜려 했을   역시 고개를 끄덕였거든요.

그런데 마지막에 기름 묻은 아이를 보고 커티스가 손을 넣을 (저는  장면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떤 망설임도 없었잖아요영화를 보며 과연  체제가 옳을까 체제가 옳을까 골치아펐는데  장면을 보고 고민이 해결되는 느낌이었어요.

결국 어떠한 시스템도 인간성에 대한 존중 없이는 굴러갈  없다라는  봉준호가 하려는  같았어요.

 

그러니깐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인간성'이란 가치에 대한 존중과 믿음이다.

그것이 바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가장 분명한 척도 아닌가.

그리고 우리가 잊어서는  되는 가장 중요한  아닌가.

 

사마리아인을 칭찬하며 컴패션을 강조한 예수의 메시지도 어떤 의미에서 일맥상통하는  같았고요.

(지금 글을  생각은.. 인간성에 대한 정의도 굉장히 애매하다는 점이에요..ㅎㅎ)

 

아무튼 제가 설국열차를 보면서 했던 생각입니다.

(정말 나이브한 해석인데 아마  한계겠죠.ㅎㅎ 사람들은 보고싶은 것만 본다는 말이 있잖아요설국열차를 보며 영화에  나름의 가치관을그냥 듬뿍 묻혀버린  같기도 하네요.)

 

 

 

아마 지금부터 저와 창희씨와의 생각이 조금 갈릴  같은데.

저는 지금 우리 헌법이 추구하는 기본권 정신민주주의 시스템(물론 한계는 있습니다만현재로선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등이

영화에서 강조한 인간성인간다움을 최대한 보장해주는 제도가 아닐까 생각해요.

물론 문제는 있겠지만 고쳐나가야 한다고 해도  체제 내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방법이 맞다고 싶어요.

 

열차가 만약 민주주의적으로 돌아갔다면최소한의 기본권이 보장됐다면?

물론 문제는 많았겠죠그게 실현될 장치도 있어야겠고요.

하지만 아이가 기관실로 끌려갔을  최소한의 제제정도는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현실에서도 마찬가집니다헌법은 엄청 진보적이죠그것을 실행할 시스템이 부재할 뿐이고..이념은 어느정도 완벽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열차 주인은 분명 생존질주라는 다른 가치에 함몰되어 새로운 시스템을 만든 것이고결국 비인간적인 행위들을 자행했던 것이죠.

 

 

저는 방주도 설국열차처럼 그렇게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의 시스템을 반드시 보존하자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스템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지도 않아요분명 부족한 부분도 많고요.

하지만 현재의  체제가(혹은  체제가 추구하는 이념이인간다움을 가장  보존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기본권 제도의 이념은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되 허용 범위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변형은 있겠지만 방주 속에서도 분명  틀을 유지하며 운영해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굉장히 보수적이었네요알고보니.ㅎㅎ

 

이제 생각이 조금 변했는데.(사실은 나의 처음 생각임..ㅎㅎ)

만약 현재의  시스템을 옹호한다면

흉악범에게도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죄를 저질렀다손 국민이죠기회의 평등살아갈  있는 기회를 그들에게도 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방주 속에서 격리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강창희

 

 

 생각에는 동희씨와 제가 질문이 제시한 상황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다른  같아요. (하지만  태도가 다르다고 해서 서로의 행동 양상을 마냥 존중할 필요도 없겠죠 생각에는   태도에도 윤리적인 우위를 정할  있을테니까요. )

 

동희씨가  상황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아무래도 노아의 방주는 인간이 만들어 지금까지 이른 시스템을 보존하고 지켜나가는 존재로 받아들이시는  같습니다. (맞는지요?) 제게는 노아의 방주는 지난 시간과의 단절인 동시에 환희때로는 공포가 되어야 하는 '새로움' 대면해야 공간입니다 순간 사람은 도덕과 같이 우리가 구축해온 질서  이상을 사유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희 씨의 생각은 헤겔이 말한 미래는 끊임없이 부족한 과거로부터충만한 상태로 발전한다시간의 흐름에 따라 발전하는 ‘통시적 변증법관점에서는 타당할 수밖에 없겠죠하지만 우리의 역사가 실제로 그랬나요?

 

동희씨의 말을 수긍한다면  흉악범은 태우고광인이나 사회적 약자는 태워야 할까요그들도 역사 발전 방향에 부정적인 존재 아닐까요실제로 그들의 역사는 역사의 발전과정에서 불연속적인 존재로 소외된  아니었을까요? (생존을 위한 실용의 관점에서   말입니다.)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이러한 연속체의 역사를 깨라! (설국열차에서는 기차를 멈춰라!) 그것이 혁명이다라고 말했죠저는 윤리의 최정점은 '무의식에 의한 윤리라고 생각합니다자신이 알지 못하면서도 누군가의 존재를 배려하고 사랑하는 것이죠저는 '인류의 멸망'이라는 상황에 가장 '대응하는 방식은 인간이 가질  있는 최선의 행위인 '무의식적 윤리' 바탕으로 새로운 세상을 정초하는 시도로 삼는 것이라고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이야기를 하다보니 우리는 서로의 주장이 계속 평행선을그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확인한 것 같네요.

 

 

박동희

그쵸저희는 원래 답을찾으려는 게 아니라 질문으로 또 다른 질문을 찾는 게 목적이니까요그러면 서로의 주장을 확인한 상황에서저는 또 다른 질문을 품게 됩니다.  우리가토론하는 도중 이야기한 흉악범에 대한 격리는 현실적인대안에 불과하고 최선의 대안은 아닌 것 같습니다여기서 궁금한 점은 악과 맞서기 위해 그것보다 덜한악을 수단으로 삼아도 괜찮을까라는 것입니다.

 

 

*언급된 책영화

 

<광기의 역사> , 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미셸 푸코

<정의론>,  존 롤스

<딥 임팩트>, 미미래더

<설국열차>, 봉준호

<내일을 위한 시간장 피에르 다르덴뤽 다르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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