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타임: 죽이는 시간]
Prologue:대한민국굴지의 S그룹. A는 최종 면접에서 고배를 마셨다. 수험번호를 통해 확인한 합격자는 솔직히 그보다 별로 나을 것이 없어 보이는 어리숙한 남자. A는 좀처럼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길을 헤맸다. 특히 “아직 일을하기에는 부족한데…A씨는자신감이 없어”라는 면접관의말이 그에게는 강렬한 펀치였다. A는 그 말을 듣고는 하루 종일 ‘그로기’상태에 빠졌다. 영어점수도 자격증도, 해외 경험도 완벽한 그는 이제 무엇을 해야 ‘자신감’을 가질 수있을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하루 종일 비틀거리며 길을 방황하던 중.허름한 길 한 가운데에서 반짝이는 간판 하나가 그의 눈에 들어온다.
“의료법인 Confidence 클리닉. 자신감을 높여 드립니다. Confidence 대작전. 개업 기념 50% 특별 할인] 문을 들어서자 마자 눈이 부신 나머지 그는 눈을 감았다.
가까스로 눈을 떴다.새하얀 벽과 천장으로 눈이 부시는 넓은 공간. 말끔하게 차려 입은 중년의 남자가 A를 맞이한다. “환영합니다. 결제는다 끝나고 하시면 되고…그냥모니터에서 시키는 대로 하세요. 별 거 아니니까 겁을 먹지 마시고.” 영문을 모르는A가 어안이 벙벙한 사이, 남자는 서둘러 사라졌다. 곧 귀를 찌르는 경보음이 울렸다.
*1단계: 박수를쳐서 모기를 ‘죽이세요’ (제한시간 30분, 경과시간 25분)
:구석의 환풍구를통해 모기가 쏟아져 나왔다. A는 처음에는 조금 귀찮았지만 ‘짝’하는 박수소리와 함께 터져 손바닥에 묻어나오는 피의 모습에서 묘한 쾌감을 느꼈다. 죄책감은 없었다. 모니터에는 친절하게도 모기가 옮기는 질병의 끔찍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2단계: 물속에 빠드려 쥐들을 ‘죽이세요’ (제한시간 30분- 경과시간 15분)
: 살아 움직이며찍찍 대는 팔뚝만한 검은 쥐를 잡는 일은 고역이었다. 꿈틀 대는 세 마리의 쥐들. A는 유난히 쥐를 무서워 했으니까. 하지만 A는 결국 해냈다. 괜히 어깨가 으쓱했다. 모니터는 쥐가 옮기는 콜레라, 페스트, 황열병에 대한 설명이 방송 중이었다.
*3단계: 싸이코패스의 심장에 칼을 꽂아 ‘죽이세요’ (제한시간 30분-경과시간 2분)
: 지명수배 중인 여자 오XX, 20명을 넘게 죽인 조선족 출신의 연쇄 살인범. 그가 걸어나왔다. A는 뉴스를 통해 익히 그의 극악무도함을 접한 바가 있었다. A는그의 얼굴을 보자 마자 테이블에 올려져 있는 칼을 냉큼 집었다. 쉽게,짧은 시간 안에 일을 마무리 한 나머지 모니터에서 방영 중이던, 성매매를 미끼로 남자를 끌어내 살인을 저지르던 그녀의 범죄행각은 시작하자마자 꺼져버렸다.
*4단계: 대머리의 남자. 그에게 주사를주입해서 ‘죽이세요’ (제한시간 30분-경과시간29분 28초)
: 모두가 아는, 모든것을 가졌던 대머리의 남자. 그가 늠름한 군복을 입은채 의자에 묶여 있었다. 모니터에는 35년 전 있었던 끔찍한 일과 그가 누리던 권세가 병렬편집된 영상이 요란하게 방송되고 있었다. A는 화가 났다. 취업을위해 오랜시간 감춰온 정의감이 꿈틀거렸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병 속의 ‘사망 촉진제’가 주사되어죽을 것이지만 그는 쉽게 누르지 않았다. 하나씩 더 잔인하게, 그는손톱을 아주 바투 깎았다. 그의 비명에 고통이 묻어나올수록 그는 뿌듯했다. 간지럽히고, 때리고, 자르고, 할퀴고, 30분은 훌쩍 갔다. 종료를 2초 남기고, 그는 버튼을 눌렀다.
*5단계: ‘죽이세요’
: 신호음과 함께 한 남자가 A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 남자는 바로, A와 함께 면접을 봤던, 최종합격자. 어리바리하던 그였다.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나쁜놈인지 좋은놈인지 쉽게 판단할 근거가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모니터를통해 가족들에게 취업을 축하받고, 친구들에게 취업턱을 사고, 예쁜여자와 소개팅을 하는 그의 모습이 생생히 전달 되었다. A의 손에는 3단계, 4단계에서사용하던 칼이 들려 있었다. “정말 죽여도 괜찮을까?” 시간은 흐르고있었다. A는 입을 꽉 다물었다. 있는 힘껏 손에 눈을 질끈감은 채 힘을 쥐고, ‘악’ 소리와 함께 칼을 앞세워 남자를 행해 돌진했다.
Epilogue:그때폭죽이 터지고 A가 눈을 떴다. 그는 치과에서나 봤던 병원용의자에 누워 있었다. 문이 열리고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이 A를향해 박수를 쳤다. “A씨의 S그룹최종 합격을 축하합니다.” 라는 현수막이 천장에서 내려왔다. 엄마, 아빠, 누나, 그리고 친구들. 자신이 죽이려고 했던 그 남자. 그리고 S그룹의 직원들. 사람들사이로 그때 그 면접관이 걸어 나왔다. “역시 내 눈이 틀리지 않았네. 젊은 사람이 모름지기 이 정도 패기는 있어야지” 어깨를 다독이며 미소짓는 그의 모순에 순간 A는 본능적으로 주먹을 꽉 쥐고 펀치를 날리고 싶었지만, 서둘러 손의힘을 풀었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숙여 그의 손을 잡은 채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신입사원인 주제에 경망스러워 보일 것이 염려된 A는 차마 입으로꺼내지 못하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야! 기분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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